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7일 경기 광주 7산 종주산행에 나선 1947년생 친구들 산행모임인 ‘화요산악회’ 회원들이 용인 제1봉인 마구산 정상 바위에서 남서쪽 능선을 가리키며 종주 코스를 설명하고 있다. 용인 = 김낙중 기자 sanjoong@munhwa.com

2014년 갑오(甲午)년은 말(馬)의 해다. 그것도 60년 만에 한 번 온다는 푸른 말, 청마(靑馬)의 해다. 그래서 ‘엄홍길 대장과 오르는 山’도 말과 관련된 산행을 계획했다. 엄홍길(54·밀레 기술고문) 대장과 함께 ‘한국 명산 1000’ 자료를 훑어보니 앞뒤로 말 마(馬)자가 붙은 산이 10여 개가 넘는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곳이 봉우리가 말의 귀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전북 진안의 마이산(馬耳山)이었다. 그러나 마이산은 이미 지난해 5월 문화일보 지면을 통해 소개됐다. 그 외에는 500m가 되지 않은 동네 뒷산 수준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가운데 특이한 말 이름 산을 발견했다. 속어(俗語·일반 대중에게 널리 통용되면서도 정통 어법에서는 벗어난 언어)이지만 순우리말로 소개된 ‘말아가리산(595m)’이었다. 자료를 확인한 엄 대장은 “예전에 태화산에서 정광산을 거쳐 백마산까지 종주산행을 했을 때 들었던 봉우리였다. 이름이 특이해 기억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마구산(馬口山)으로 부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소개했다.

경기 용인시에서 동북쪽으로 보이는 길고 높은 산릉이 광주산맥이다. 광주산맥은 말과 연관이 많은 산맥이다. 경기 광주(廣州)시의 백마산(白馬山·503m)으로 시작돼 마락산(478m), 말아가리산, 말치고개 등 말과 관련된 지명이 많다. 그중에서 가장 높아 보이는 곳이 두 곳인데, 중절모를 쓴 듯한 모습의 태화산(泰華山·644m)과 북쪽으로 보이는 삼각봉인 말아가리산이다. 높이는 태화산이 50여m 높지만 용인 시내에서 보면 비슷하게 보인다.

말아가리산은 정상의 바위가 마치 말이 입을 벌린 모습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유운리(에버랜드 부근)에서는 말머리 모습으로도 보인다. 예전에는 산 지도에 이름도 없는 ‘무명봉’이었으나 태화산에서 마락산-휴양봉-정광산-노고봉-발이봉-백마산으로 종주산행을 즐기는 등산 애호가들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용인에서 제일 높은 산은 광교산(光敎山·582m)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용인의 지역 신문이 산을 연재하면서 지도상 등고선에서 광교산보다 13m 높은 봉우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용인 제1봉’으로 소개하면서 시민들에게 알려지게 됐다. 말아가리산은 용인시에서 가장 높은 산임에도 지도에 무명산이라고 표시돼 있다가 지역 주민들의 고증을 통해 ‘말아가리산’으로 불렸는데 ‘아가리’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 때문인지 지금은 마구산으로 불리는 추세다. 그래서 용인시에서도 정상석에는 ‘마구산’으로 표기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동물의 입을 의미하는 순수 우리말인 아가리를 사용한 명칭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말아가리산을 마구산으로 한문으로 쓰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주장은 이렇다. “원래 동물은 입이라 부르지 않고 아가리라 불렸다. 그만큼 인간을 존중해서일 것이다. 100여 년 전 용인시 지명(조선지지 자료)에는 말아가리산-마아산(馬牙山)으로 부른 곳이 있지만 말아가리산은 순수 우리말이다. 어쩌면 말아가리산이 마구산(馬口山)-마구산(馬九山)-말아홉마리산으로 변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떻든 마구산이 용인 제1봉으로 알려지면서 용인시에서 등산로를 대대적으로 정비해 코스는 10여 개가 넘는다. 그 가운데 마구산만 오르는 경우에는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금어리(퉁점)에서 소방도로로 정비 중인 임도를 따라 선황당을 거쳐 정상에 이르는 1.5㎞ 코스를 2시간여에 걸쳐 왕복할 수 있다. 이 밖에 금어리 쇠내실-연못-전나무밭-넓적고개-정락봉-정상에 이르거나 용인공원묘지에서 출발해 임도를 따라 선황당으로 오르는 코스도 지역 주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코스다.

그러나 ‘땀나는 산행’을 계획하고 나서는 등산 애호가들은 마구산만으로는 절대 만족하지 못한다. 그래서 대부분 등산객들은 한국외대 용인캠퍼스를 출발점으로 잡거나 거꾸로 광주시 도척면 추곡리에서 출발해 마구산에 오르는 종주산행 코스를 택한다. 지난 7일 마구산행에서도 그랬다. 취재팀은 포곡읍 금어리 퉁점에서 곧바로 마구산에 올랐으나 정상에서 만난 다른 등산객들은 한국외대 용인캠퍼스에서 출발, 정광산을 거쳐 태화산을 하산길로 잡고 산을 오르고 있었다. 마구산 정상에서 만난 강종옥(67) 씨는 “친구들과 ‘화요산악회’를 만들어 수도권 일대 산행을 하고 있는데, 오늘은 올해가 말의 해인 만큼 말과 인연이 많은 ‘광주산맥 7산’을 종주하기로 했다”면서 “몇 년 전에는 친구들과 함께 백두대간을 50여 회의 산행을 통해 완주하기도 했지만 수도권에서 종주산행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는 이곳이 최고다”고 종주산행의 즐거움을 설명했다. 백마산에서 정광산-마락산-마구산-태화산까지의 종주산행은 20여㎞로 6∼7시간이 소요된다.

마구산 정상에 오르면 입 벌린 커다란 바위를 만난다. 바위 옆으로 용인시에서 세운 정상석에는 ‘마구산 595.0m’로 표기돼 있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용인 제1봉답게 거침없다. 일출과 일몰 장소로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상에서의 전경은 이채롭기도 하다. 북쪽으로 노고봉, 정광산 그리고 용인공원묘지가 펼쳐진다. 양편으로 계단식으로 정렬된 공원묘지는 또 다른 감회다. 죽어서도 질서를 강요당하는 것 같아 한편으로 씁쓸하기도 하다. 뒤편 동쪽엔 넓적고개부터 쫓아오던 태화산릉의 웅장함을 내세우고 북쪽 마락산 쪽 광주산맥은 거침이 없다. 서쪽으로 포곡읍 너머 인자해 보이는 성산 그리고 용인시내 빌딩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또 다른 쪽의 흰 비닐하우스 집단도 이채롭다.

온 길을 되돌아 하산할 때는 급경사이기에 조심해야 한다. 이날도 지난번 내린 눈으로 군데군데 빙판길이어서 아이젠을 착용했다. 선황당 서쪽까지 연결된 임도는 차량이 다닐 수 있는 넓은 도로다. 도로를 따라 내려서면 퉁점마을이다. 퉁점까지 버스가 통행한다. 경기도 청소년수련원을 지나 금어2리 마을회관 앞에서 쇠내실길과 만난다.

하산길을 금어리가 아닌 한국외대 용인캠퍼스 쪽으로 잡았다면 정광산(563m)을 거쳐 ‘반종주산행’을 즐길 수 있다. 정광산에 이르기 전에는 패러글라이딩하는 활공장이 있다. 이날은 평일에 날씨가 고르지 못한 탓인지 하늘을 나는 사람들은 없었다. 이어 노고봉(老姑峰·578m)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곤지암리조트가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슬로프를 질주한다. 마구산을 올랐다가 봐서 그런지 그들이 ‘달리는 말’ 같아 보인다. ‘새해에는 그렇게 질주하시라’는 기원과 함께.

취재팀은 마구산에서 정광산 쪽으로 하산했지만 이날 마구산에 오른 대부분 등산객은 태화산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태화산을 광주산맥 7산 종주 시발점으로 잡는 이들이 많다. 백마산부터라면 종주점이기도 하다. 태화산만을 오르는 사람들도 많다. 곤지암에서 양지면으로 이어지는 지방도로 옆에 위치한 태화산은 규모가 작아 어느 방향에서 산행을 시작해도 3시간 이내에 끝낼 수 있다. 산자락에는 고려 충숙왕 때 일연선사가 창건했다는 백련암과 백련암부도(경기문화재자료 53호)가 있고, 대웅전 아래에는 장군수가 있다.

용인=박광재 기자 kj59@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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