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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 나무 / 브리타 테켄트럽 글·그림, 김서정 옮김 /봄봄

누군가와 헤어지는 일, 소중한 사람과 이별하는 일은 아프고 힘들다. 하지만 이별 없는 생은 없고 아이들이라고 이 삶의 진실 앞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우리 독자에겐 아직 생소한 독일 작가 브리타 테켄트럽의 그림책 ‘여우 나무’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 슬픈 날, 아이를 꼭 껴안고 읽어주면 좋은 책이다. 소중한 사람을 더 이상 볼 수 없을 때 그 사람을 추억하고 그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잔잔하고 평화롭게 이야기해주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이 그림책은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위로를 주고, 사람과의 이별뿐이 아니라 시간이든, 물건이든, 한 시절이든 소중한 무언가를 떠나보내야 할 때 따듯한 위안을 건넨다.

작가가 세상을 떠난 자신의 할머니를 기리며 쓰고 그렸다는 그림책은 옛날옛날에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던 오렌지빛 여우가 숨을 거두면서 시작한다.

“여우는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지만 이제는 많이 지쳤답니다. 그래서 아주 느릿느릿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숲 속 공터로 갔어요. 그는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숲을 지그시 바라보고 땅에 누웠어요. 여우는 눈을 감고 숨을 깊이 내쉰 뒤 영원한 잠에 빠져들었어요.”

눈을 감은 여우 위로 눈이 내리고 여우를 사랑했던 부엉이는 자신의 날개로 여우를 감싸 안는다. 곧 다람쥐, 족제비, 곰, 사슴, 새, 토끼와 생쥐가 찾아온다. 여우를 좋아하고 여우가 사랑했던 이들은 여우 없는 숲 속은 상상할 수 없다. 오래오래 말없이 앉아 있던 이들은 여우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우와 술래잡기를 하던 날, 같이 도토리를 주웠던 일, 아기 곰을 돌봐줬던 일 그리고 함께 바라봤던 해지는 광경까지. 그 사이 여우가 누워 있던 자리에서 아무도 모르게 조그만 오렌지 나무 싹이 올라온다. 싹은 나무로 자라고 동물들이 여우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수록 점점 더 크고 아름다워진다. 남은 친구들이 쌓아 올린 추억과 기억의 두께만큼 나무도 풍성하게 자란다는 비유가 아름답다. 추억과 사랑으로 자란 나무는 동물들의 새 보금자리가 돼 새들은 그곳에 둥지를 틀고, 다람쥐는 줄기에 집을 짓고, 사슴과 토끼는 그늘에서 낮잠을 잔다.

삽화는 특별히 기교를 부리지 않고 동물의 특징을 잘 잡아낸 단순한 그림과 오려붙이기로 만든 간단한 배경으로 처리됐지만 잔잔하게 들려주는 평화로운 이야기와 잘 어울린다. 세상을 떠나서도 친구들을 지켜보고 있겠다는 듯한 여우의 형형한 눈빛은 다시 한번 그림책에 눈길을 보내게 한다. 책을 덮고, 오렌지가 탐스럽게 열린 ‘여우 나무’ 아래 자리를 잡고 있는 표지 그림 속 여우를 보면서, 떠난 사람의 삶은 그리고 지나간 순간과 아름다운 시절은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과 추억으로 완성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