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왕이(王毅) 외교’를 통해 시진핑(習近平)체제하의 ‘신형(新型)대국관계’ 전파에 본격 나서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중국이 구상하는 신형대국관계의 요체는 이렇다. 첫째 슈퍼 파워인 미국에 도전하지 않는다는 것, 둘째 그러면서도 해야 할 말은 다 하겠다는 것, 셋째 미국으로부터 강대국에 걸맞은 대우를 보장받는다는 것이다.

미·중 간 다양한 전략채널을 유지하면서도 과거사·영토분쟁 상대인 일본에는 단호하게 대응하는 ‘강단’도 있다. 고속성장으로 축적한 대규모 ‘물량’을 바탕으로 확실히 도광양회(韜光養晦·힘을 숨기고 참고 기다린다)에서 탈피했다는 게 외교가의 평가다.

최근 이 같은 ‘시진핑 체제’ 중국 외교를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왕이 외교부장의 방미 행보다. 왕 부장은 19일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의 회담 직전 기자들과 만나 “6자회담 재개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케리 장관이 “북한의 핵 도전과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대화하겠다”는 원론적 입장만 밝힌 것과는 대조적이다.

왕 부장은 다음 날인 20일에도 “북한은 9·19 공동성명과 2·29 북·미 합의에 복귀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6자회담 조기 재개’ 입장을 밀어붙였다. 북한의 비핵화 사전조치를 요구하는 미국에 당당히 목소리를 낸 셈이다. 앞서 왕 부장은 18일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6자회담 당사국이 참가한 반민반관 성격의 1.5트랙 토론회에도 참석해 “6자회담을 조기에 개최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렇다고 무작정 미국에 도전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시 주석은 6월 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신형대국관계를 언급하면서 ‘강대국(Great Power)’이 아니라 ‘주요국(Major Power)’으로 스스로를 낮췄다.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뜻이다. 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6자회담 조기 재개를 주장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거처럼 한·미·일 대(對) 북·중·러 대결구도로 회귀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는 점에서는 진전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장은 유지하되 ‘유연함’을 가미한 외교로 대접까지 받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왕이 스타일’도 한몫한다. 왕 부장은 전임인 양제츠(楊潔) 외교담당 국무위원보다 훨씬 유화적이며, 핵심 현안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는 ‘서구형 외교관’ 스타일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많이 듣고 상대를 배려한다는 이야기다.

한 외교 소식통은 “시진핑 체제가 초기이기는 하지만 미국과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면서 유연함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왕이 같은 스타일의 외교관이 주요 보직에 오른 것도 대표적인 증거”라고 말했다.

신보영 기자 boyoung2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