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군축·비확산 전문가인 조슈아 폴락 과학응용국제협회(SAIC·Science Applications International Corporation) 연구원의 주장처럼 북한이 이미 핵무기용 고농축우라늄을 만드는 원심분리기의 핵심부품을 자체 생산하고 있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특히 우라늄을 이용한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의 경우 어디까지 개발되고 확산돼 있는지를 추적할 수 없을 뿐더러 어디서 농축활동이 이뤄지는지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또 국제사회가 북한과 비핵화에 합의한다고 해도 북한의 우라늄 농축능력을 검증할 방법도 없다. 따라서 유엔 등 국제사회가 핵무기를 만드는 전략물자의 북한 반입을 차단하는 등 제재를 가하고 있는 현재의 대북 전략도 수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폴락 연구원의 주장은 벤 로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이 23일 오후(한국시간 24일 오전) “북한이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어 이란과는 핵개발 단계가 다르다”고 언급한 것과 맞물려 더욱 주목된다. 로즈 부보좌관의 이날 언급은 국제사회의 핵 대처법이 이란은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도록 포기시켜야 하는 반면 이미 핵무기를 가진 북한에는 핵무기를 버리고 비핵화에 동참하는 쪽으로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폴락 연구원은 북한 내 고농축우라늄 부품공장 등의 위치 등 실증적 증거를 내놓지는 못했지만, 상당한 정황증거들을 제시했다. 그는 원심분리기의 6대 핵심부품이 이미 북한 내에서 생산되고 있다는 것을 북한 과학전문지와 관련 사진, 대외선전 자료 등을 통해 분석했다. 폴락 연구원은 원심분리기의 6대 핵심부품 가운데 육불화우라늄과 진공펌프기, 자기베어링, 주파수 인버터는 이미 북한의 과학보고서와 특허수상 자료를 통해 확인됐다고 밝혔다. 또 마레이징 강철은 2009년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이 현지지도에서 ‘위대한 승리’라고 평가한 주체강철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컴퓨터 수치제어 유동성형 기계들은 중국으로부터 입수한 사진 자료를 통해 확인했다고 폴락 연구원은 설명했다.

정부는 북한의 우라늄 핵심부품 자체 생산 주장과 관련해 “정보사항이라 확인할 수 없다”고만 밝히고 있다. 국책연구원의 한 핵전문가는 “북한이 우라늄 핵심부품을 자체 생산하고 있다는 실체적이고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면서도 “여전히 핵무기와 관련된 부품들이 거래되는 ‘블랙마켓’이 있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제재와 차단은 계속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원심분리기에는 핵심부품 외에도 수만 개의 부품이 들어가는 만큼 철저히 반입을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승배 기자 bs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