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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 상, 한국 길을 걷다 / 시마 무쓰히코 지음 / 서호철 옮김 / 일조각

“요번에 젊은 애들끼리 놀로 가기로 했어라우. 계절도 좋고 바쁠 때도 아닝께 산에 가서 종일 놀다 올라고 하는디, 시마 상도 같이 가실라요?”, “아재요, 아재가 그런 것까지 안 하시도 됩니다. 지가 나중에 다 뽑을 테이끼네, 놔뚜고 아재는 고마 진지 잡수로 가이소.”

구수한 사투리 대화가 쉼 없이 이어지는 독특한 수필집이 나왔다. 얼핏 농촌과 농민의 정감을 해학 어린 문체로 표현해낸 고 이문구 소설과도 닮은 듯 보인다. 그런데 저자는 일본인. 1970년대 전반 한국 연구를 시작한 외국인 인류학자 1세대, 시마 무쓰히코(嶋陸奧彦) 교수가 연구논문에는 실을 수 없었던 이야기와 감흥을 ‘또 다른’ 기록물로 남긴 것. 일본 도호쿠(東北)대와 서울대 교수도 역임한 바 있는 지은이는 1974년부터 2004년까지 한국의 농촌과 도시를 돌아다니며 얻은 깨달음을 ‘문화적’에세이로 펴냈다.

1969년 8월, 유네스코 대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약 보름간 한국을 방문한 시마 교수는 1974년 한 작은 마을을 찾아가 인류학자로서 첫 발을 내딛는다. 책의 1부는 당시의 이야기다. 전남 청산동과 경북 상월동(모두 가명)에서 각각 1년씩 생활했을 때의 일화를 담았다. 한국인과 한국 사회를 향한 일본인 연구자의 시선은 객관적이면서도 애정이 가득하다.

“집 안에서도 남자와 여자의 방이 나뉘어 있다. 부엌으로 이어지는 안방은 주부의 거처여서, 가족 이외의 남성은 이 방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반면 사랑방은 남자 주인의 방으로서,(28쪽. 후략)”, “마을의 집을 찾아가도 아주머니가 부엌에서 얼굴을 조금 내밀고 ‘아무도 없어라우’하고 쏙 들어가 버리는 일이 많았다.(중략) 아주머니들이 기꺼이 이야기 상대가 되어 주기까지는 석 달 가까이 걸렸다.(29쪽)” 이방인이 들려주는 이 같은 ‘옛날 이야기’는 2013년을 사는 우리에게 애틋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2부에서는 정착 현지조사 이후 20여 년간 한국을 오가며 보고 생각한 것들을 정리했다. 족보와 호적을 연구할 때의 에피소드와 느낌, 농촌 마을이 도시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가진 소회 등을 기록했다.

30여 년간 장·단기로 한국에 머물며 직접 촬영한 빛바랜 사진들도 흥미롭다. 책 곳곳에 양념처럼 자리한 사진들은 시마 교수가 1974년 처음 현지조사를 했던 전라남도 청산동의 전경부터, 요절한 아들의 묘를 등지고 선 한 아버지, 나주 우시장의 풍경, 김을 매다가 참을 먹는 사람들, 경상북도 상월동의 새마을운동 기공식, 하얀 중절모를 쓰고 버스 관광을 떠나는 노인의 모습 등 1970년대 농촌마을의 소박한 생활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도시의 발달과 함께 출현한 노점, 상가 벽을 뒤덮은 간판과 외국어학원 셔틀버스 등 1980∼90년대 변화된 사회상도 놓치지 않았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