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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원로 보수 학자인 안병직(77)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국사회 보수진영을 진단하면서 “우리나라 보수는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를 확립하려는 절박한 자기 이념이 없다”고 일갈했다. 안 교수는 12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보수는 자유민주주의를 생명으로 하고, 이는 ‘의회주의’와 ‘법치주의’라는 두 기둥을 통해 그 정치체제가 지탱되는 것인데, 현재의 보수는 이를 너무 쉽게 방기시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헌법체계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정통성을 확립하는 게 가장 시급한 보수의 임무”라고 지적했다.

―지금 보수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의회주의, 법치주의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정치권에 무한 적대 정치가 만성화되고 있다. 민주당에서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자꾸 거리로 나가고 촛불을 드는데, 이런 건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이것은 헌법을 교란하는 것으로 정치적으로 타협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니다. 그런데 요즘 보면 보수진영에서 정당한 법적 절차를 통해 이를 해결하기보다는 정치적 흐름이나 여론에 영합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법치주의란 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건가.

“제대로 된 보수라면 전두환의 추징금 사건에 있어 소급효 문제를 제기하는 등 절차적 정당성 여부를 가장 중요시해야 한다. 법이 여론이나 사회적 흐름에 함부로 휩쓸려 가서는 안된다. 정치에 있어서도 똑같다. 여당과 야당 모두 헌법체계 속에서 활동하는 것이고, 헌법체계 밖에서 정치를 한다는 건 민주주의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보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

“지금의 보수는 과거의 권위주의를 넘어 보다 확고한 틀이 잡힌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를 구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볼 때 보수당이 건강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여야가 의회와 법을 통해 절차적으로 해결해 나가려고 해야지, 말로써만 해결점을 찾으려고 해선 곤란하다. 진보도 달라져야 한다. 진보가 적과 적으로 갈라져서 극한투쟁으로 일관하려 하는데 그러면 진보의 미래도 없다.”

―보수는 ‘올드하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당연하다. 젊은이들은 현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비현실적인 미래를 꿈꾸는 것이 맞다. 이건 우리사회에 너무나도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만 차차 나이가 들면 세상 보는 시각도 변하기 마련이다. ‘올드하다’는 걸 나쁘게 볼 필요는 없어 보인다.”

―보수진영에서도 친미, 반미 논란이 있는데.

“난 보수이면서 반미라고 하는 건 한심한 소리다. 기준은 국익이다. 우리 안보와 경제에 도움이 되면 그게 친미면 어떻고 친일이면 어떻나. 선진사회를 싸워 이겨야 할 대상으로 삼으려고 하면 우리도 발전이 없다.”

―보수의 위기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가.

“정통성 확립이다. 국민통합이 중요시되는 지금 시점에서 그 수렴될 지점은 다름아닌 대한민국, 그리고 이를 떠받치는 헌법체계라 할 수 있다. 좌든 우든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당성, 그리고 지금까지 이뤄낸 번영과 발전의 역사를 토대로 모두 함께 출발해야 한다. 대한민국, 그리고 대한민국의 틀인 헌법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바탕으로 국민통합이라는 시대적 책무를 보수가 짊어져야 한다.”

―요즘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등의 내란 음모 혐의 사건이 이슈인데 보수에서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나.

“북한은 기아에 허덕이고 국가로서 존립 전망이 없는 실패한 국가다. 보수진영이 통합을 이야기하려면 친북적 성향을 가진 이들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대한 절실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또 민주당도 종래와 같이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는 듯한 친북성향으로는 더 이상 전망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현일훈 기자 one@munhwa.com

안병직 명예교수는

안 교수는 1965년부터 2001년까지 서울대에서 경제학을 가르쳤다. 1960~1970년대엔 대표적 진보 경제학자였다. 하지만 한국 경제의 지속적 발전을 실증적으로 연구하는 과정에서 우파 경제학자로 전환, 1990년 이후 좌파 경제이론과 북한체제를 본격적으로 비판하기 시작했다. 현재 ‘시대정신’ 명예 이사장을 맡고 있다. ▲1936년 경남 함안 출생▲서울대·도쿄대 경제학부 교수 ▲전 뉴라이트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