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속담에 “위에 정책이 있으면 아래엔 대책이 있다”(上有政策, 下有對策)란 말이 있다. 정책이 있으면 백성들은 이를 거스를 방법이 있다는 뜻이다. 백성들이 원치 않으면 어떤 정책을 내놓아도 먹히지 않는다는 의미인 동시에 진정한 정책의 효과를 얻기 위해서 백성들의 대책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충고이기도 하다.

최근 중국 베이징(北京)의 한인촌인 왕징(望京)의 불법 복제 DVD 판매가게들을 보면서 이 말의 뜻을 다시 한번 새긴다. 왕징에는 불과 2, 3년 전만 해도 불법 복제 DVD를 파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밤이면 골목거리마다 가방 한 가득 불법 복제 DVD를 가져와 파는 이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아예 불법 복제 DVD만 전문으로 파는 가게도 호황을 누렸다.

당시 한국 음식점들이 많은 왕징 푸퉁시(阜通西) 대로변에만 두 개의 한국 슈퍼마켓 크기의 비교적 큰 DVD가게가 있었다. 두 가게는 매일 저녁이면 새로운 작품을 사러 나온 한국인들로 붐볐다. 특히 한국 드라마는 당시 선풍적 인기를 끌어 새로운 드라마가 나올 때마다 왕징의 한국 아줌마들은 물론이고 나이를 불문한 중국 여성들로 북적거렸다.

그런데 상황은 지난해 들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매일 밤 손님으로 북적이던 가게가 갈수록 한산해지더니 지난해 연말 어느 틈에 가장 컸던 가게가 문을 닫은 것이다. 올해는 나머지 한 가게 역시 ‘가게를 내놓습니다’라는 푯말이 붙었다. 역시 장사가 잘 안 되는 게 이유다. 중국 당국의 단속이 강해졌기 때문일까? 아니다. 중국 당국의 단속은 항상 있어왔고 그때마다 불법 복제 DVD 판매상들 역시 잘 버텨왔다. 또 단속 때문이라면 남은 가게 역시 진작에 문을 닫았어야 옳다.

가게 주인에게 물어보니 그 이유가 재미있다. “인터넷에서 웬만한 영화를 다 볼 수 있게 되면서 돈을 주고 불법 복제 DVD를 찾는 사람이 없어졌다.” 영화를 값싸게 보려는 백성들의 욕구가 자연히 해소되면서 ‘정책에 맞서는 대책’이 필요 없어진 것이다. 역시 당국의 단속보다 무서운 게 ‘시장의 논리’다.

베이징 = 박선호 특파원 shp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