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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영화들, 특히 스릴러 영화는 게임입니다. ‘치밀한 계산(logical intentions)’과 ‘지적인 두뇌 회전(intellectual cerebration)’이 벌이는 게임입니다. ‘치밀한 계산’은 시나리오 작가나 감독의 트릭이고, ‘지적인 두뇌 회전’은 그 트릭을 읽어내는 관객의 능력입니다. 관객의 예상을 한바탕 뒤집기 위해 막판에 심어놓는 비틀기 장치, 즉 ‘반전(twist)’은 시나리오 작가의 회심의 카드인 셈입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하고 주연한 미스터리 스릴러 ‘블러드 워크’도 게임의 재미를 제공하는 영화이고, 요즘처럼 무더울 때 납량물로도 무척 즐길 만한 작품입니다. 원제 ‘Blood Work’의 뜻은 blood test, 즉 ‘혈액 검사’입니다. 동명의 원작은 베스트셀러 소설가 마이클 코넬리가 썼는데요, 은퇴한 FBI 노익장과 ‘예고 연쇄살인마(code killer)’가 벌이는 두뇌게임 속으로 관객을 초청합니다.

“Catch Me 903 472 568.” 이것은 정체불명의 연쇄살인마가 ‘잡을 테면 잡아봐(Catch me if you can)’라며, 범행을 저지를 때마다 현장에 남기는 암호입니다. 놈이 지목한 게임 상대는 전직 베테랑 FBI 요원인 테리 맥칼렙(클린트 이스트우드)입니다. 테리에게 원한이 있는 자일 것만 같습니다. 한편 테리를 원하는 사람이 또 있습니다. 미모의 그라시엘라입니다. 그녀는 최근 괴한에게 여동생을 잃었는데요, 경찰의 수사가 지지부진하자 테리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것입니다. 흥미를 느끼는 테리는 사건을 맡을 뜻이 있음을 내비칩니다.

“당신의 여동생 글로리와 범인에겐 뭔가 연결고리가 있소(There’s some intersecting link between Glory and the killer).” 글로리가 편의점에서 살해되던 장면을 찍은 비디오테이프를 분석하던 테리는 범인이 글로리의 귀걸이를 빼가는 행동을 놓치지 않습니다. 아울러 테리는 글로리가 살해되던 시기에 살해된 제임스 코델과 그녀의 연결고리도 수사합니다. 그때 그라시엘라가 결정적 단서가 될 말을 하는군요. “동생은 매달 헌혈을 했어요(She gave blood every month).” 테리는 제임스와 글로리가 희귀한 혈액형의 소유자였다는 공통점을 밝혀냅니다.

이제 테리에게 남은 과제는 범인이 남긴 숫자 ‘903 472 568’의 의미를 해독하는 것입니다. 암호해독전문가도 밝혀내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그걸 우연히 본 글로리의 어린 아들이 뚜벅 이렇게 말하는군요. “1만 빠졌어요(There is no one).” 테리는 아이의 관찰력에 혀를 내두릅니다. 과연 테리는 그 해독을 기초로 범인의 정체를 밝혀낼 수 있을까요? 아뿔싸, 더 꼬입니다. 수사망에 오른 유력한 용의자들이 차례차례 살해됩니다.

“이제 어떻게 할 계획이에요?” 테리를 걱정하는 그라시엘라가 묻습니다. 그러자 테리가 의미심장하게 대답합니다. “글로리의 심장이 나에게 길을 보여줄 거요(Her heart will guide me).”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그라시엘라가 그에게 했던 말이기도 합니다. 무슨 뜻일까요? 영화의 도입부에서 확인할 수 있고, 또한 스포일러가 아니기 때문에 공개합니다. 테리의 몸 안에는 죽은 글로리의 심장이 들어있습니다. 이식받은 것이지요. 이제 테리는 범인을 만나러 갑니다. 관객은 그 지점에 반전이 있길 기대하며 위태로운 테리를 뒤따르게 될 것입니다.

작가·외화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