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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빨치산의 참회록 : 어머니 고향 그리고 조국 / 한국전쟁기념재단돚이춘구 편저 /이지출판

“‘빵빵!’ 그때 나는 무조건하고 맹목적인 생에 대한 의지의 전율을 느꼈다. 국군이 우리 ‘비트’를 발견하고 집중사격을 하면서 ‘나오라’고 소리쳤을 때 나는 보총을 놓고 손을 들었다. 나는 꼼짝없이 포로가 되었다. 살겠다고 손 들은 나는 국군에 끌려가면서 새로운 공포에 휩싸였다. 포로된 빨치산들은 무조건하고 총살시킨다고 산에서 우리들은 그렇게 선전해왔고 또 그렇게 믿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국군들은 포로가 된 나에게 따뜻한 밥과 담배를 주었고 우리들을 여기 수용소에 올 때까지 따뜻한 형제의 손길로써 대하여 주었다…나는 당의 정치적 기만선전을 자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공산주의적 관념은 힘을 잃어갔다.”

1951년 12월 중순 전라북도 북부 덕유산 지역에서 생포된 뒤 전향한 ‘빨치산(partisan)’이 쓴 글이다.

정전 60주년을 맞아 전향 빨치산 100여 명의 문집 ‘지리산 빨치산의 참회록:어머니, 고향 그리고 조국’이 나왔다. 한국전쟁기념재단이 펴낸 이 책에는 6·25전쟁 당시 파란만장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던 빨치산의 생생한 고백과 참회, 전쟁기록, 포로생활, 전향과정, 공산주의 허구성에 대한 신랄한 비판 등이 담겨있다.

이들의 생생한 체험과 감정이 시와 수필, 논설 등에서 오롯이 살아난다.

6·25전쟁 당시 빨치산들의 구성은 지리산에 인접한 전라도를 비롯해 서울, 충청도, 경상도, 북한 등 전국적으로 분포돼 있었다. 일제 강점기의 소작농과 머슴 출신도 있지만, 일본 유학을 다녀온 학자, 교사, 시인, 화가 등 다양하다. 이 때문인지 책에는 예술적 감성이 반짝이는 삽화와 시가 적지 않다.

수기나 시 끝 부분에 능숙한 솜씨로 누드화와 고향풍경, 꽃 그림 등을 그려넣었다. 이들은 소련군의 약탈을 신랄하게 고발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의 스틱이나 핸드백까지 약탈하는가 하면 백주 성폭행 등 강도 같은 만행을 저질렀다고 목격담을 전했다.

또한 해방 직후 소련군이 압록강 수풍댐 발전기 7기 가운데 5기와 함흥 비료공장 설비를 떼간 일 등 6·25전쟁 전후의 북한 실상을 생생하게 고발한다. 이들은 조만식 선생을 비롯한 우국지사 숙청과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 등도 비판하고 있다.

전향 빨치산들의 불타는 수기는 전쟁의 비극성을 꿰뚫고 있다. 함께 공부하던 고향 친구와 적이 돼 싸워야 했던 참혹한 운명을 그린 시(너와 나)가 절절하다.

‘너는 빅토르 위고, 바이런, 키이츠를/ 난 톨스토이와 투르게네프, 고리키를 애독하였고(중략) 죽을 때까지 떨어지지 말자고 소학에서 중학, 중학에서 대학으로 쌍둥이처럼 그림자처럼 붙어다니었건만/ 너는 빛나는 대한민국 국군으로/나는 공산주의 기만에 속아 험악한 산속으로/얄궂은 운명은 우리를 갈래갈래/떼어 놓고야 말았다.’

추위와 굶주림, 추격의 공포 속에서 빨치산들은 늘 고향과 어머니, 누이, 옛사랑이 가슴에 사무쳤다. ‘어머니 내가 왔소/누나야 동생아 울지마라/아-눈물로 그리던 고향이여/(중략)/분이는 어디에 있나/널 찾아 내가 왔다/사랑에 울면서 내가 왔다’(‘귀향의 노래’ 중에서)

“낮이면 국군, 밤이면 공산당”이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이념 대립이 극에 달했던데다, 필화에 대한 두려움까지 겹쳤기 때문인지 체험자들이 쓴 한국전쟁 기록은 빈약한 편이다. 극한의 체험이 녹아있는 전향 빨치산들의 글은 전쟁 기록문학으로도 손색이 없다.

예진수 기자 jiny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