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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 다니엘 튜더 지음, 노정태 옮김 / 문학동네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그것도 단순히 한 사람을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우리가 걸어온 길과 오늘날의 모습,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속표정까지 샅샅이 드러나는 거울 말이다. 이 책은 그처럼 새삼스럽게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서울 특파원이었던 저자는 자신이 겪었던 한국에서의 경험을 살려 서구인에겐 거의 완벽한 ‘한국 소개서’를 내놨다. 지난해 11월 영문판 ‘한국, 불가능한 나라(Korea, The Impossible Country)’로 미국 터틀사에서 출간돼 약 2만 권이 팔렸다고 한다. 이번에 출간된 한국어 번역본에선 뜻이 더욱 정확하게 전달되도록 약간 제목을 바꿨다.

왜 ‘기적을 이룬 나라’인가. 저자는 “한국은 두 가지 기적의 발원지”라고 단언한다. 첫째는 흔히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경제 성장이다.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미화 100달러 미만이었다. 하지만 이제 한국은 구매력 기준 1인당 GDP에서 세계 12위의 경제 대국이다. 두 번째 기적 또한 매우 값진 것이다. 오래지 않은 1987년까지만 해도 군사독재 국가였던 한국은 오늘날 비교적 안정적인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가 ‘불가능한 나라’라고 원제를 정한 데는 단순히 ‘기적을 이룬’ 업적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부정적인 이유 또한 담겨 있다. 즉 한국은 교육·명예·외모·직업적 성취 등에서 불가능한 기준에 도달하도록 너무 큰 압박을 가하는 나라다. 따라서 ‘살아남기 위한’ 경쟁 또한 세계에서 가장 치열하다. 한국은 정치와 경제 면에서 이룩한 놀라운 성취뿐 아니라, 이룰 수 없는 목표를 요구한다는 점에서도 ‘불가능한’ 나라인 것이다.

저자는 “세계적인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경제 대국을 만들기 위해 대한민국은 모든 것을 여기에 집중했는데, 그에 따른 대가 또한 당연히 지불해야 했다”고 꼬집는다. 그 대가는 ‘무한 경쟁’이라는 강박이었다. 먹고살 만해져도 경쟁은 계속됐다. 새것이라면 일단 손에 넣고 봐야 직성이 풀리는 ‘네오필리아(Neophilia)’, 외국에까지 널리 알려진 성형수술 열풍, 결혼 상대를 찾을 때조차 서로에게 ‘완벽’을 요구하는 엄친아·엄친딸의 신화…. 이 모든 것이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오른 한국사회를 끝없는 스트레스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책에선 이 밖에도 ‘한(恨)’과 ‘흥(興)’을 표제어로 한 문화적 측면, ‘정(情)’으로 대변되는 사회적 인간관계, 무속신앙을 비롯해 불교와 유교, 기독교 등 종교적 상황, 동성애와 여성 문제 등 다양한 주제들이 다뤄지고 있다. 어떤 부분에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들이 ‘교과서적’으로 나열돼 있어 좀 지루한 감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이 당초 한국을 잘 모르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전방면에 걸쳐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다고 평가할 만하다. 무엇보다도 책 전반에 깔려 있는 저자의 ‘한국 사랑’이 눈에 띈다.

저자는 한국의 문화와 정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만났다. 저명한 정치·경제인뿐만 아니라 택시 기사, 월급쟁이, 가정주부, 미용실 직원, 대학생 등 다양한 사람들에게 접근했다. 심지어는 무당과도 인터뷰를 시도했다. 그중에는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 씨도 포함돼 있다. 저자는 이 씨가 말한 내용이 가장 인상적이라며 책 서두와 말미에 거듭 소개하고 있다. 이 씨는 저자에게 이렇게 털어놓았다.

“한국인은 참 대단하죠. 하지만 슬프게도, 한국인이 깨닫지 못하는 게 있어요. 한국인들은 만족할 줄을 몰라요. 때로는 쉬기도 해야 하고, 우리 스스로를 격려하기 위해 샴페인도 음미할 줄 알아야 하는데 말이죠.”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