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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가에 ‘실버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 등 이른바 ‘H4’의 좌충우돌 유럽배낭여행을 담은 ‘꽃보다 할배’는 단연 실버 바람의 중심에 있다.

케이블 채널 tvN 새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는 지난 12일 방송에서 평균 시청률 4.8%(닐슨 코리아·전국 기준), 최고 시청률 6.9%를 기록하며 지난주 기록을 경신했다.

수도권 기준으로는 평균 5.7%, 최고 8.4%를 기록했다. 앞서 5일 첫 방송에서는 시청률 4.15%, 분당 최고 시청률은 5.39%를 기록했다. 통상 시청률 1%만 넘겨도 흥행 성공이라 평가받는 케이블 프로그램에서 대박에 해당하는 수치다.

‘꽃보다 할배’(사진)는 KBS ‘1박2일’을 국민 예능으로 이끈 나영석 PD가 회사를 옮긴 뒤 내놓은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방송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43세의 짐꾼 겸 통역사 겸 내비게이션 겸 가이드 등을 맡은 배우 이서진의 합류도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 등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기 힘든 ‘할배’들을 내세웠다는 점이 시청자들의 관심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는 평이다. 80세인 이순재부터 70세로 막내인 백일섭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평균 나이는 76세다.

백일섭은 또 선우용녀(68)와 호흡을 맞춰 황혼이혼의 위기를 맞은 7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펼칠 예정이다. 오는 8월 5일 방영 예정인 JTBC 일일극 ‘더 이상은 못 참아’를 통해서다. ‘부모’가 단골 역할이던 배우들이 주연으로 극을 이끄는 것은 단막극을 제외하면 찾아보기 힘든 경우다.

지난 9일엔 눈에 확 띄는 시청률 기록이 나왔다. 전날 방송된 KBS 1TV ‘가요무대’ 시청률이 12.6%를 기록한 것. 김남길, 손예진 주연의 ‘상어’는 물론 최근 방송을 시작한 문근영의 ‘불의 여신 정이’, 고수, 손현주, 이요원의 ‘황금의 제국’ 등 쟁쟁한 3사 월화 드라마를 제치고 동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 ‘가요무대’의 중심엔 김동건 아나운서가 있다. 올해 74세인 김 아나운서는 1985년부터 시작된 ‘가요무대’의 살아있는 역사나 다름없다. 전국 고등학교 순회 토크쇼 ‘우리들 세계’를 통해 널리 알려진 김동건 아나운서. 1970년대 중고생이었던 50대 이상의 중장년층 시청자라면 누구나 그의 구수한 입담에 빠진 경험이 있을 것이다.

실버 파워의 선두주자는 1980년 11월 9일 첫 방송한 KBS 1TV ‘전국노래자랑’의 터줏대감 송해다. 올해 88세인 송해는 꾸밈없는 모습과 탁월한 소통 능력으로 세대를 초월해 ‘송해 오빠’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변함없이 받고 있다. 그런가 하면 집단 토크쇼 ‘세바퀴’ ‘웰컴 투 시월드’ ‘황금알’ 등에선 엄앵란(77), 전원주(74), 사미자(73) 등 70대 배우들이 활약하고 있다. 이들은 풍부한 인생 경험을 바탕으로 시청자들의 속이 후련하게 거침없는 입담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방송가에 실버 바람이 거세게 부는 이유는 뭘까.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나이 든 연기자에 대해 과거와는 확실히 달라진 시선을 그 배경으로 꼽았다. 과거엔 나이가 들면 보조적인 인물로 인식했지만 요즘엔 어르신 연기자들의 가치와 역량을 중시하는 시선이 생겼다는 설명이다. 그는 “드라마의 경우 어르신 연기자들이 극의 갈등을 정확히 짚어내는 힘이 있어 시청자들이 그들의 연기력, 공력 등에 대해 가치를 매기기 시작했다”며 “이런 인식으로 호감도가 생기면서 예능 프로그램을 해도 공감대를 가져갈 수 있다”고 말했다. 정 평론가는“‘꽃보다 할배’의 경우 젊은 세대와의 소통에 초점을 맞췄다”며 “어르신들의 권위를 벗어던진 리얼 예능이 젊은 층을 큰 웃음으로 이끌었다”고 말했다. 실제 이 프로그램의 연령별·성별 시청률은 20대 여성이 7.18%로 가장 높았다.

드라마평론가인 윤석진(국어국문학) 충남대 교수는 “다양한 매체들이 등장하면서 젊은 세대들의 ‘본방 사수’가 없어지고 중장년 세대가 리모컨을 차지하고 있다”며 “실버 바람은 주요 시청자가 중장년, 노년으로 넘어가는 시청 환경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고 말했다.

김도연 기자 kdych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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