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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답지 않을 권리 / 뱅상 세스페데스 지음, 고광식 옮김 / 명랑한지성

남성성의 상실과 회복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남성성’이란 용어에서는 어딘가 이단의 냄새가 풍긴다. ‘남성성’이란 단어 속에서 어쩐지 전사, 마초 등의 이미지, 혹은 파시즘적이거나 가부장적인 것들에 대한 옹호 등이 읽히는 것.

그러나 저자가 이 책에서 개탄하는 남성성의 상실이란 이런 남성우월주의적 의미가 아니라 ‘여자들에 대한, 혹은 실재적인 관계에 대한 욕망’의 거세를 의미한다. 현대사회에서 남자는 스마트폰 따위의 신기한 기술제품에 탐닉하면서 여자에 대한 욕망을 잃고 점점 더 무기력해져가고 있다. 남자들이 자신에게만 너무 몰두한 나머지 타인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타인이 없으면 문제도, 욕망도, 변신도 없다. 그럼에도 남자들은 포르노, 스마트폰, 컴퓨터 등에 몰두하거나 스포츠나 가정생활, 일 등으로 충족되는 순화된 만족을 선호하고 있다. 저자는 스마트폰의 페이스북에 ‘웃겨 죽겠다’는 댓글을 달거나 ‘좋아요’ 칸에 체크하며 관계 속에서의 욕망을 방어하며 마치 ‘수음과도 같은 만족감’을 얻을 따름이라고 한탄한다.

저자는 남자들의 무력감의 원인으로 눈부신 성과와 극단적인 경쟁만을 부추기는 체제와 노동의 가치를 잃어버린 노동환경을 꼽았다.

생산에 대한 압력, 끊임없이 저울에 올리는 경쟁, 실업에 대한 불안, 즐거움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노역이 남자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다는 주장이다. 생산이나 경쟁에 기여하지 못하는 감각적 즐거움은 죄악으로, 우정 등 인간관계에 대한 관심은 시간낭비로 간주되는 세상에서 남자들은 기득권 유지를 위해 여자들을 밀쳐내며 권력과 권위에 집착하며 스스로 고립돼가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또 두려움을 표현하면 안 된다거나 울면 안 된다는 등의 ‘감정의 은폐’를 남자의 덕목으로 교육하는 것도 완전히 잘못된 남성적 개념을 받아들이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자신들의 결점과 공포를 인정하는 남자들이 바로 진짜 남자다운 남자이고, 그래야만 결점을 극복하고 공포를 이기는 진정한 용기가 발현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한편으로 남성성의 회복을 자유로운 성본능에서 찾자는 얼핏 보면 불온하고 노골적으로 읽히는 주장에 책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남근과 수음, 섹스에 대해 도발적이며 역동적인 사유도 과감하게 쏟아놓았다.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