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평대군 시문집 ‘송계집’ 초고본 첫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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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16대 왕 인조(재위 1623∼1649)의 셋째 아들 인평대군(麟坪大君) 이요(1622∼1658)의 시문집인 ‘송계집(松溪集)’(8권 2책)의 초고본이 새로 발굴됐다. 1774년(영조 50) 왕명으로 목활자본 문집인 ‘송계집’을 간행하기 전 인평대군이 시를 모아놓은 것을 왕실의 사자관(寫字官)이 정서(正書)한 필사본으로 후대에 간행된 문집에는 빠진(산절·刪節) 시들이 많이 실려 있어 그에 대한 새로운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송계는 인평대군의 호다.

성낙훈(80) 전 서울 증산중 교장은 최근 문화일보에 만 36세로 사망한 인평대군이 죽기 2년 전인 1656년(효종 7·병신년) 음력 3월(모춘·暮春)에 쓴 서문이 있는 ‘송계기고(松溪紀稿)’(6권 6책)를 공개했다.

교직을 정년퇴임하고 현재 경기도박물관에서 문화해설사로 자원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는 성 전 교장은 “‘송계기고’가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에서 성의(誠意)약방을 차리고 45년 동안 한의사로 일했던 선친이 소장하고 즐겨보시던 책”이라고 유래를 설명했다.

‘송계기고’ 6책은 ‘선집기고 공육(先集紀稿共六)’이라고 새겨진 목함(책 상자)에 들어 있다. 목함은 정면에서 봤을 때 가로 20㎝, 길이 31㎝, 높이 7㎝ 크기다.

‘선조(조상)의 문집 기고 6책’이란 목함에 새겨진 글씨의 뜻으로 볼 때 인평대군의 후손 집안에서 간직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겉표지에 ‘기고(紀稿) 일(一)∼6(六)’이라 써 있으며 책은 크기가 가로 17㎝, 길이 27.5㎝다. 각 책당 최소 76쪽에서 최대 90쪽이며 각 쪽당 10행, 1행에 최대 20자(字)의 글자가 해서체로 필사돼 있다.

인평대군의 형으로 제17대 왕이 되는 효종(재위 1649∼1659) 등 왕이 지은 시인 어운(御韻)의 경우, 존경의 표시로 한 줄을 위로 끌어올려 쓰는 대두법(擡頭法)이 적용됐는데, 이때는 1행에 최대 21자가 쓰여 있다.

가령 ‘기고 일’에는 인평대군이 1656년 3월에 자서(自序)한 ‘기고서(紀稿序)’에 이어 부전지에 편집내용을 표시한 ‘송계기고 권지일(松溪紀稿卷之一)’과 ‘시(詩)’라는 글자를 써서 붙였으며 사자관이 정서한 시들이 수록돼 있다.

1643년(인조 21) 계미년(癸未年)에 부사인 형조판서 한인급(韓仁及)·서장관인 사인 심동귀(沈東龜) 등과 함께 선양(瀋陽)에 사신으로 갔을 때 여행지에서 지은 시를 비롯해, 후금(청나라의 전신)의 수도였던 선양 볼모 시절이나 연행(燕行) 때 조신들과 차운(次韻·남이 지은 시의 운자를 따서 시를 지음)한 시들이 대부분이다.

인평대군은 병자호란(1636) 직후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두 형에 이어 1640년 선양에 끌려갔다가 이듬해 돌아왔으며, 이후에도 여러 차례 사신으로 중국을 왕래한 바 있다.

성 전 교장은 “효종과 당시 춘궁(春宮·동궁 또는 세자)이었던 현종을 필두로 영의정을 지낸 정태화·김육·이경석, 좌의정을 역임한 구인후, 대제학 이일상·조경 등 ‘송계기고’에 호나 이름이 나오는 헌시자의 시만 378수(首)에 달한다”고 밝혔다. 인평대군의 시를 포함하면 500여 수에 달할 것으로 추정돼 ‘송계집’보다 훨씬 많은 양의 시가 남아 있다.

반면, ‘송계집’에는 전 8권 중 앞의 3권에만 시가 수록돼 있다. 신하들이 함부로 못 고치는 어운은 거의 그대로 후대 간행된 문집에 실려 있지만, 인평대군의 자서와 시 등은 손을 많이 봐 절반 이상 다른 어구로 고친 사례도 다수 확인된다.

지난 14일 ‘송계기고’를 살펴본 서지학자인 신승운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장 겸 대동문화연구원장은 “산절할 내용을 표시한 흔적이 없는 것으로 봐서는 문집 간행 직전 단계보다 앞서는 필사본으로 보인다”며 “비교연구가 필요하지만 문집 간행 때는 산절된 시가 많이 실려 있어 인평대군 연구자들에게 풍부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정문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은 “빛이 바랬지만 표지는 중국에서 수입한 붉은 색깔의 당지(唐紙)이며 질 좋은 한지로 왕실의 화원(畵員)이 정성 들여 그린 인찰지(印札紙) 위에 사자관이 정서한 글씨로 보아 조선왕실의 후원으로 제작됐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고 말했다.

한편,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 일본 덴리(天理)대 소장 이마니시 류(今西龍) 문고 소장본을 복사해온 ‘송계기고’ 1책(56장)이 전한다. 하지만 이는 시문집이 아니라, 1636년(인조 14) 12월 14일부터 1645년(인조 23) 3월까지 약 10년 동안 선양에서 있었던 사건들을 일기체로 기록한 것이다.

최영창 기자 yc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