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서울 양천구 목2동에 위치한 마을공동체 ‘모기동마을’이 진행한 ‘어린이 공공예술교육’ 프로그램에서 마을 어린이들이 서로의 얼굴을 그려주며 즐거워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유아와 어린이들에게 좋은 책을 제공한다’ ‘책을 매개로 같은 지역 아이들과 부모들이 서로 작은 공동체를 이루게 한다’

‘아이들이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좋은 어린이 도서관이 있는 마을만들기에 힘쓴다’.

지난 2001년 서울 성동구 행당동 134번지에 문을 연 마을공동체 ‘책 읽는 엄마, 책 읽는 아이’의 설립목적이다.

마을공동체 활동으로 도서관을 이용하는 엄마들이 자연스레 친해졌다.

책 읽는 엄마들의 모임이 만들어졌고 아이들도 엄마를 따라 책을 읽기 시작했다. 구성원들이 내는 회비와 후원금이 마을공동체의 주수입원이고 구청과 성동교육청, 서울문화재단 등으로부터 지원도 받는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마을 주민들은 2002년 열린교육마당 ‘반디학교’를 개강했고 2003∼2004년 지역사회 자원봉사단 ‘다하미’를 만들었다. 품앗이 육아방 ‘느리미집’과 품앗이 방과후 프로그램 ‘뚱딴지’도 개설했다. 공동체 활동이 이어지면서 ‘내 아이’에 대한 생각은 ‘남의 아이’에까지 확장됐다. 끈끈한 유대관계를 통해 도서관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이제 어엿한 청소년이다. 이 아이들이 지금은 마을도서관에서 사서도우미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주민들의 관계와 자발적인 노력이 성공적인 마을공동체를 꾸려낸 것이다.

지난해 서울시는 도시의 양적 성장 이후 나타나는 다양한 사회문제를 공동체로 회복한다는 목표 아래 본격적인 마을공동체 시대를 열었다. 조인동 서울시 혁신기획관은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을 공동체를 통해 주민 스스로 해결한다는 것이 마을공동체의 개념이고 그러려면 핵심은 인간관계 회복이 돼야 한다”며 “요즘 이슈로 떠오른 이웃간 층간 소음 갈등만 보더라도 인간관계와 공동체가 회복됐을 때 비로소 풀릴 수 있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마을공동체에 정해진 규모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한 골목에 모여 사는 서너 가구가 뭉칠 수 있고 수천 명 규모의 아파트 단지가 한 마을이 될 수도 있다. 관건은 어떻게 주민들이 관계망을 형성하고 서로 협동하는 공동체를 이뤄가는지 여부다.

물론 서울에는 ‘책 읽는 엄마, 책 읽는 아이’처럼 과거부터 다양한 마을공동체가 자생적으로 존재해 왔다. 서울시는 앞으로 마을공동체를 주요 사업으로 삼고 조금 더 적극적인 산파 역할을 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1월 지원 부서인 마을공동체담당관실이 신설됐고 법적 근거 마련을 위해 ‘마을공동체 만들기 지원 등에 관한 조례’를 같은 해 3월 공포했다.

이어 시 산하 서울연구원은 서울 전역의 마을공동체를 기초조사하고 5년 중장기 방향과 전략을 담은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사실 ‘책 읽는 엄마, 책 읽는 아이’ 외에도 서울에는 이미 마을공동체의 좋은 사례를 여럿 찾을 수 있다. 강북구 우이동 삼각산 자락에 위치한 ‘삼각산 재미난 마을’의 경우 고도제한에 묶여 고층건물이 들어서지 못한 지역에 10여 년 전부터 공동체가 생겨났다. 공동육아협동조합인 ‘꿈꾸는 어린이집’을 만들면서 주민간 유대가 싹텄고 아이들이 취학연령이 되자 지역단체와 교육활동가들이 결합해 ‘삼각산 재미난 학교’가 설립됐다. 아이를 통해 친해진 부모들이 의기투합해 마을사랑방 ‘재미난 카페’도 열었다. 재미난 카페는 단순한 사랑방을 넘어 인문학 강좌, 타로 강좌, 와인 강좌 등이 진행되는 주민 여가활동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노원구 중계동의 청구3차 아파트는 주민들이 관리사무소 3층을 독서실로 개조하면서 이웃 간 유대가 싹텄다. 구청 지원을 받아 관리사무실을 리모델링한 뒤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이 운영됐다. 주민들 간 믿음이 쌓이자 아파트 옥상에서 상자 텃밭가꾸기 사업이 진행됐다. 규모가 커지면서 음식물 쓰레기를 퇴비로 만드는 사업으로까지 발전했고 급기야 마을기업인 ‘청구EM환경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변영수 청구3차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장은 “우리 아파트에도 처음에 불신과 갈등이 있었는데 해결 방법을 찾다가 아파트 공동체를 확성해 보자라는 생각을 입주자 대표들 중심으로 하게 됐다”며 “입주자대표회의실을 아파트 학생들을 위한 독서실로 내놓은 것을 시작으로 주민들이 서로 신뢰하고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도시개발에서 소외된 지역인 은평구 산새마을은 15년간 반상회가 이뤄진 적이 없을 정도로 주민 교류가 없었다. 구청이 이 마을을 주민참여형 재생사업 시범단지로 선정한 이후 마을공동체가 싹텄다. 무작정 개발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주민 스스로 주거환경을 개선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후 주민들은 마을에 방치된 쓰레기를 청소하고 그 자리에 꽃밭을 조성했다. 텃밭을 조성해 지역 어른들이 상추, 배추 등을 재배한 후 수확한 채소를 주민들과 나눠 먹었다. 또 먹거리를 복지센터와 경로당 등에 기부하면서 정이 싹텄다.

동작구 성대골마을은 책을 읽기 위해 모인 주부 5명이 시작이었다. 지렁이를 분양하고 버려진 땅에 국화를 심는 등 작은 활동부터 시작했다. 2009년 지역 풀뿌리단체인 희망동네의 마을도서관 운동에 참여했다. 아이들을 이끌고 모금운동을 벌여 2010년 성대골 어린이 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이 도서관을 시작으로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이 싹텄다. 2012년 4월에는 방과후 학교인 ‘마을학교’까지 열었다. 마을 에너지 절약을 위한 성대골 절전소도 설치했다. 가정별로 절약한 에너지를 합산해 매일 확인하는 운동을 벌이는 등 성대골마을은 이웃 간 유대를 시작으로 서울의 대표적 에너지자립마을로 거듭나는 중이다.

김영주 기자 everywhere@munhwa.com

이미지 크게보기 서울 성북구 삼선동 일대 마을공동체 ‘장수마을’ 주민들은 마을기업 ‘동네목수’를 설립했다. 동네목수는 마을의 비어있는 집을 직접 수리하고 ‘작은카페’로 만든 뒤 운영하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서울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