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3일 “침략에 대한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정해져 있지 않다. 국가 간 관계를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한 발언은 과거 일본 일각의 과거사 망언(妄言)들과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 우선, 일본 군국주의 제국의 침략 역사 자체의 원천적 부인을 넘는 정당화·미화 발언이다. 침략을 받은 한국이나 중국, 동남아 국가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든, 침략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논리다. 일제에 의한 강제동원이나 수탈, 독도 문제 등 각론 수준의 망언을 뛰어넘는다.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통절한 반성을 담은 무라야마 담화가) 역사적 가치가 없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아베 총리는 “그런 문제가 지적되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재침략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셈이다.

둘째, 상식적으로도 궤변이다. 무력(武力)을 앞세워 남의 나라 주권을 침탈하는 것이 침략 행위라는 사실은 학술적으로도, 국제법적으로도 명명백백히 정립돼 있다. 유엔헌장 역시 대소(大小) 각국의 평등권, 무력 사용의 금지, 침략행위의 금지 등을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다. 이 헌장은 바로 과거 일본이 자행했던 것과 같은 침략을 막기 위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연합국이 모여 제정한 것이다. 1, 2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다시는 반복하지 말아야겠다는 인류 전체의 염원이 담긴 것이다. 아베 총리의 발언은 이런 인류의 문명사적(文明史的) 당위도 도외시하겠다는 범죄적 주장이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는 그런 인식을 국가 정책으로 밀고 나갈 뜻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아베 총리가 참의원 답변에서 “(과거사가) 외교 문제가 됐을 때 (상대국가 주장이) 틀렸다는 걸 알면서도 입을 닫아왔고 터부시해왔던 게 사실”이라고 밝힌 것은 대외적 마찰도 피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한 것이다.

이런 막가파식 역사 도발에 대한 대한민국의 대응 역시 거기에 상응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우선,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戰犯國)이자 패전국(敗戰國)임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인 만큼 당시의 연합국, 승전국들이 ‘역사 동맹’을 만들어 공동대응해야 한다. 일제 침략의 최대 희생자인 한국이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한다. 중국 역시 “일본은 동아시아의 도발자”라는 입장을 분명히하고 있다. 미국 정부 및 정치권도 같은 인식이다. 근본적으로는 일본의 재침에 대비해 국력을 길러야 한다. 한미동맹을 더 강화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