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환경주의자인 리어 키스가 채식이 실은 자기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만드는 주범이라는 도발적 주장을 내놨다. 사진은 채식을 즐기는 어린이. 문화일보 자료사진

채식의 배신 / 리어 키스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언젠가 영국 BBC 방송의 환경담당 기자와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차를 가지고 다니지 않을 뿐 아니라 채식을 한다고 했다. 그는 우유도 먹지 않는 철저한 채식주의자인 비건(vegan)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소, 돼지 등을 수탈한 데서 온 음식인 육식을 혐오했다”며 “영국에서 환경을 커버하는 기자라면 누구든 채식주의자라고 봐도 된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채식은 건강과 동물의 생명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생태주의자들 사이에서 정의의 대명사다. 비만과 성인병에 신음하는 현대인들에게 ‘채식’은 해답처럼 여겨지고 있다.

저자 역시 20년간 극단적인 채식을 실천하던 비건 출신이다. 그는 채식주의의 주요 주장들이 무지에 기초한 것이라며 도덕적, 정치적, 영양학적 면에서 그 주장들을 논박한다.

예컨대 미국 재림교(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신자는 평균적인 미국인에 비해 고혈압이나 당뇨, 관절염, 대장암, 전립선암 및 심혈관 질환의 발생률이 낮다. 재림교 신자가 고기를 삼가기 때문에 채식주의 진영에서는 이를 곧잘 인용한다. 그러나 재림교 신자는 술과 담배를 하지 않고 커피도 마시지 않는다. 책에 따르면 이들이 평균적인 미국인에 비해 건강한 원인을 ‘고기를 먹지 않아서’라고 판단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그들이 건강한 것이 채식 덕분이라고 주장하려면 비교 집단이 필요하다. 고기 섭취만 제외하고 다른 모든 조건이 비슷한 집단. 바로 모르몬교 신자들이다. 모르몬교 신자 또한 술, 커피, 담배와 각종 불량 식품을 피하지만 고기는 먹는다. 이 두 집단 중 어느 쪽이 더 오래 살까? 모르몬교 신자다.

저자는 채식주의가 생명 존중과 정의, 지속 가능한 사회 추구라는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무지와 오해로 인해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있다고 잘라 말한다. 그러면서 동물 권리주의, 농업의 파괴성, 기아의 해결책으로 곡물이 제시되는 점 등 채식주의 진영의 가치들을 검증해 나간다.

저자는 오히려 채식이 ‘먹고 먹히는’ 생태계 순환고리를 무시한 오만한 이념이라고 지적한다. 콜레스테롤과 지방의 중요성을 간과하게 만드는 위험한 식단이고, 곡물 기업이 배후를 조종하는 ‘친환경 사기극’이라고 폭로한다.

채식주의자들이 고기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믿는 콩에 대한 환상도 부숴 버린다. 책에 따르면 콩 속에는 갑상선종 유발 물질인 고이트로겐이 들어 있다. 콩의 식물성 에스트로겐은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수준을 낮춰 성욕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콩에는 소화 효소 트립신을 억제하는 인자가 들어 있어 콩을 먹으면 가스가 차고 배가 더부룩하면서 복통과 설사 증상이 생긴다. 저자는 “1주일에 2회 이상 두부를 먹은 사람들은 두뇌 노화가 가속화되고 인지 능력이 저하되며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을 확률이 2배 이상 높아진다”고 말한다.

“채식주의 윤리는 결국 기계적인 모델의 한 변형일 뿐이다. 그 윤리 체계는 우리 인간의 인본주의적 혹은 종교적 윤리 체계를 우리와 비슷하게 생긴 몇몇 동물에게만 확대·적용한 것일 뿐이다. 감각이 있고 살아 숨 쉬고 의사소통을 하면서 산소와 흙, 비, 바이오매스를 만드는 세상의 나머지 생명, 그 수십억 종의 생물은 완전히 무시되고 만다. 그들이 생명을 만들고, 바로 그들이 생명이다.”

저자는 “많은 생물을 죽은 물질이라 선언하는 채식주의 윤리는 이 세상 전체를 죽은 물질이라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한다. 채식주의자는 정의와 연민, 살아 있는 문화를 끝없이 갈망하지만, 그들의 윤리는 세상을 파괴하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채식을 고집해 온 할리우드 스타 앤젤리나 졸리는 최근에 고기를 다시 먹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비행기를 탈 때도 따로 도시락을 챙길 만큼 채식을 철저히 지켜왔다. 그가 육식을 재개한 이유는 6명의 아이를 잘 돌보기 위해 체력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서 계속되는 채식주의 식단으로 ‘영양분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개체 간 평등 의식을 온당하게 유지하면서 평화롭게 육식을 받아들이는 저자의 생태론적 세계관이 독특하다. 다만 ‘채식이 나쁜 이유’가 곧 ‘육식이 좋은 근거’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책이다.

예진수 기자 jiny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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