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1909년 창덕궁 인정전에서 기념촬영한 순종 황제와 내각. 1906년 개정된 문관 대례복과 같은 해 별도로 제정된 궁내부 및 예식원 대례복을 입은 모습이다. 민속원 제공

“(일본의) 의관은 모두 양제(洋製)라고 한다. 그들의 공복(公服)은 바지가 몸에 착 붙어서 조금도 여유가 없으므로 일어서면 뒤의 둔퇴(臀腿·엉덩이와 넓적다리)와 외신(外腎·고환) 있는 곳을 만져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다. (…) 바느질도 역시 가로세로를 어긋나게 하고, 조각조각을 서로 붙이며, 느슨하게 벌어진 틈(주머니)이 있어서 여기다 물건을 넣어 둔다.”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 직후인 1876년 4, 5월 일본에 수신사로 파견된 조선의 예조참의 김기수가 견문기인 ‘일동기유(日東記遊)’에서 일본 관료의 서양식 복제에 대해 서술한 내용이다. 김기수는 중국 명(明)나라의 의복제도를 계승한 조선의 전통 의관(衣冠)에 대해 자부심을 표현했지만, 조선도 일본처럼 서구식 대례복 제도를 도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어떻게 양복을 입게 됐을까. 이경미(40·의류산업학) 한경대 교수는 자신의 서울대 의류학과 박사학위 논문을 수정·보완해 최근 출간한 ‘제복의 탄생’(민속원)에서 오늘날 한복 대신, 우리의 일상복이 된 양복의 기원을 1900년(광무 4) 대한제국 시기 본격 도입된 서구식 문관 대례복에서 찾는다.

여기서 서구식 대례복은 대한제국 시기 문관들이 황제가 참석하는 국가 행사와 외교 행사 때 입어야 했던 문관의 제복을 말한다. 전체적으로 바이콘(bicorn)으로 불리는 산(山)모양의 모자에 연미복형 또는 프록코트형 코트, 조끼, 바지를 입고 검(칼)을 차는 것으로 일습(한 벌)이 구성된다. 유럽의 궁정복식에서 유래한 것으로, 서양이 동양으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아랍과 아프리카, 동아시아 여러 국가들에서 근대 주권 국가의 상징으로 앞다퉈 채택됐다.

구한말·대한제국 시기 서구식 문관 대례복이 도입·수용되는 과정을 살펴본 이 교수는 28일 “서구의 문관 대례복은 국내외에서 황제를 알현할 때 입는 등 외교와 매우 관련이 깊다”며 “대한제국의 서구식 문관 대례복 도입도 국제사회에 주권국가로서 동등한 자격을 갖췄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1910년 일제에 강제병합되면서 대한제국의 서구식 대례복은 10년 남짓밖에 사용되지 않았지만, 양복이 일반 국민들에게 노출되면서 이후 누구나 양복을 입을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됐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이 교수에 따르면, 조선 정부는 1875년 처음으로 서구식 대례복 제도를 알게 됐다. 1868년 메이지(明治) 유신으로 왕정복고가 이뤄진 뒤 국교 회복 협상차 1875년 2월 24일 부산에 도착한 일본 외무성 직원 모리야마 시게루(森山茂)가 동래부사의 연회에 ‘서구식 예복’을 입고 ‘정문 출입’을 하겠다고 주장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

앞서 일본은 1872년(메이지 5) 문관 대례복을 서구식으로 제정한 바 있다. 일본의 경우, 1872년 메이지 정부가 발표한 영국식 대례복과 같은 해 이와쿠라 도모미(岩倉具視)가 이끈 사절단이 영국 런던에서 빅토리아 여왕을 알현하기 직전 유럽 현지에서 만든 프랑스식 대례복 등 2종류가 공존하다가 1886년(메이지 19) 문관 대례복 개정령을 통해 프랑스식으로 통일됐다.

서구식 문관 대례복 도입이 순조로웠던 일본과 달리, 조선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1884년 전통시대 복식제도의 간소화를 내용으로 하는 갑신의제개혁(甲申衣制改革)이 단행됐으나 여론의 반대와 갑신정변이 일어나면서 중단됐다. 1894년(고종 31) 갑오경장의 일환으로 이뤄진 갑오·을미 의제개혁에서도 조선에서 처음으로 흑단령(黑團領)을 입는 ‘전통식 대례복 제도’를 도입한 선에서 만족해야 했다.

대한제국이 출범하고 1899년(광무 3) 고종황제가 군복형 양복인 대원수복을 먼저 착용한 뒤 1900년 4월 칙령 제14호 ‘문관복장규칙’과 칙령 제15호 ‘문관대례복제식’을 발표함으로써 한국에서도 서구식 관복제도가 정식으로 도입됐다.

이후 10년이란 짧은 기간 동안 같은 시대 일본 등 다른 나라의 대례복에서 볼 수 있었던 유형이 모두 나타난다. 칼라가 가슴 앞에서 여며져서 V네크라인을 형성하는 개금(開襟)형 연미복(1900년 제정 문관 대례복)과 칼라가 목 앞에서 여며지는 입금(立襟)형 연미복(1906년 개정 문관 대례복), 프록코트 형태(1906년 제정 궁내부 및 예식원 대례복) 등이 바로 그것.

이 교수가 박기종 대례복(문관 칙임관 2등) 등 현존하는 7건의 대한제국 시기 대례복 유물 가운데 6건을 직접 조사한 결과, 연미복의 재질인 양모섬유 ‘나사(羅紗)’와 모자의 재질인 첨모직(벨벳) ‘천아융(天鵝絨)’ 등은 당시 국내에 없는 재료인 데다 제작 역시 불가능했기 때문에 러시아와 프랑스, 일본 등지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함께 대례복의 관례에 따라 서양식 금몰 자수 기법으로 제작된 무궁화(문관 대례복)와 오얏(궁내부 및 예식원 대례복) 문양 등이 국가 상징 문양으로 채택됐다.

이 교수는 “일본의 서구식 대례복의 문양이 황실과 무가(武家)의 상징인 오동과 국화 문양인 데 비해, 대한제국은 전통적으로 국토를 상징해 왔고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무궁화를 채택했다”며 “대한제국의 서구식 대례복에 전면 도입된 무궁화 문양은 일제강점기에 민족정신을 결집하는 매개물로 역할을 했고 광복 후에는 국화(國花)로 자리매김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영창 기자 ycchoi@munhwa.com

이미지 크게보기 한국자수박물관 소장 민철훈의 대례복(문관 칙임관 1등) 유물 중 검을 찬 대례의(大禮衣·상의와 바지) 모습. 1900년 제정된 서구식 대례복이다. 민속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