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농업전문 베스트셀러 작가인 조엘 샐러틴이 자신이‘샐러드바’(뜯어먹을 풀이 잔뜩 있는 목초지)라고 이름 붙인 폴리페이스 농장에서 닭을 안고 있다. 알에이치코리아 제공

미친 농부의 순전한 기쁨 / 조엘 샐러틴 지음, 유영훈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

사람도, 흙도 운동이 필요하다. 운동을 하지 않고 빈둥거린 땅은 생태학적으로 서서히 게으름뱅이가 됐다가 종국에는 죽어버린다. 소나 닭도 마찬가지다. 동물운동장에서 마음껏 뛰어놀아야 소, 닭, 돼지도 건강해진다. 책은 한 발 더 나아가 ‘소와 닭, 돼지와 토끼가 댄스를 하는 농장’이라는 재미있는 표현을 썼다. 저자는 농장에서 식품을 만드는 과정이 가축과 농부, 땅과 태양, 땅속 지렁이가 함께 춤을 추는 발레 공연이라고 말한다.

동물들이 춤을 추다 벽에 부닥쳐도 부상을 입지 않도록 저자의 농장에서는 콘크리트와 철근 사용을 금지한다. 한국에서도 도시생활을 접고 농촌으로 이주하는 귀농 인구가 늘고 있다. 가축의 본성을 존중하면서 농사를 짓는 것이야말로 귀농·귀촌이 진정한 농촌 르네상스로 이어지는 길이다. 1957년생인 저자도 ‘뉴스 리더’ 등의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하다 24세 때 전업농부가 됐다.

‘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농부’로 불리는 저자는 동양적 무위자연의 세계를 꿈꾼다. 나와 너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서구적 문화와는 다른 공생의 철학이다. 그가 운영하는 폴리페이스 농장은 자연의 순리에 따라 동물도, 식물도 평화롭게 공생하는 곳이다. 핵심은 ‘풀 농법(grass farming)’이다. 태양에너지로 풀이 자라나고 초식동물과 육식동물로 이어지는 생태계 순환의 고리를 살려내는 농법이다. 풀은 태양에너지를 이용해 탄소를 축적하고 산소를 공기 중으로 내뿜는다. 소들은 기름진 땅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즐기며 풀을 우물거린다.

잠시 후 닭이 그 자리로 가서 소가 먹다가만 풀의 밑동을 뜯는다. 소똥 속 구더기도 골라서 먹는다. 그러면 소똥은 파헤쳐지고 땅속으로 다시 고르게 배어들어 땅을 기름지게 하는 양분이 된다. 가축에게 뜯긴 풀은 억센 풀로 다시 자란다. 소와 닭과 돼지가 먹은 풀이 똥이 되고, 흙이 되고 다시 풀이 된다. 만물이 연결돼 있다. 소의 소다움, 닭은 닭다움을 오롯이 표현할 수 있는 이 같은 환경은 공장식 축사 체제에서 비웃음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자연 본연의 힘을 믿는 축산법이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

저자는 농장을 다양성이 활개치는 작은 우주로 규정한다. 한 포기 풀을 우주의 피로 여긴다. 농장도 판매 목표를 정하지 않고 영혼의 목표를 정한다. 폴리페이스 농장에서 생산된 고기와 채소는 농장에서 4시간 거리로만 배달·판매한다. 4시간 거리를 식품의 맛과 영양을 유지할 수 있는 최대의 거리로 한정한다. 지산지소(地産地消·지역에서 생산된 농작물을 그 지역에서 소비함) 원칙을 준수하지만 고급 레스토랑과 의식 있는 소비자 덕에 농장은 꾸준히 흑자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미국에서는 하나의 식품이 평균 2400㎞를 여행한다. 하나의 식품이 식탁에 오르기까지 평균 15㎈의 열량이 소모되는데 그중 4㎈가 운송에 쓰인다.

“모양은 사과이나 맛은 사과가 아니다. 사과나무에서 열리고 빨간색 열매에 꼭지가 있어도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 현대인들은 자연 그대로의 식품을 잘 먹지 않는다. 가공식품이 신선식품을 압도해 버렸다. 식당에서도 자꾸 조리를 하고 조미료를 친다. 왜 그럴까? 농부가 올바른 식품을 생산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농부가 있는 그대로 먹으면 맛이 없는 식품을 생산하기 때문에 조미료와 식품첨가물이 각광을 받는 세상이 돼 버렸다고 날카롭게 꼬집는다. 현대의 산업농업이 식탁 위의 건강뿐 아니라 미식도 앗아갔다는 것이다.

국내 한 방송사의 건강 다큐멘터리에서 한 남성의 머리카락을 검사했다. 그는 1주일에 2∼3회 회식을 하며 주 메뉴는 고기였다. 하지만 이 남성의 머리카락을 검사한 결과, 그의 주식은 옥수수로 나왔다. 돼지나 소가 먹는 사료가 옥수수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가축의 본성을 존중하는 축산법을 채택하고 있다. 가축을 공장식 축사에 가두지 않고 들판과 숲에 풀어놓는다. 대규모 땅 위에 일년생 작물을 키우지 않으며 제초제와 유전자 조작 종자를 거부한다. 이 같은 농사법이 건강한 먹거리의 기본 조건이 된다. 날마다 자라나고 강해지는 흙을 상상해 본 일이 있는가. 저자는 식품의 종국적 토대인 흙의 생명력을 강하게 하기 위해 토양을 기른다. 저자는 자신의 땅이 아닌 곳에서는 오줌도 안 싼다고 한다. 그 대척점에 서있는 농부들은 햇볕이 들어오지 않는 콘크리트 축사에 소를 빽빽하게 채워 놓고 아프지 말라고 항생제를 주사한다는 것.

저자는 현대의 식품산업 전반이 가축에게 주사할 항생제와 농작물에 뿌릴 농약에 의해 지탱된다고 지적하며, 갑자기 닥칠 가축전염병, 사료값 폭등과 같은 일반적 농부의 걱정에서 자신은 자유롭다고 말한다. 자연의 원리에 따라 토양을 보살피고, 야생초의 힘을 활용하는 풀 농법은 뜨거운 열정으로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교과서 역할을 할 것 같다.

예진수 기자 jiny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