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퍼스티커로 철학하기 / 잭 보웬 지음, 이수경 옮김 / 민음인

자동차 범퍼나 유리창의 스티커로 ‘초보운전’ ‘아이가 타고 있어요’를 떠올리는 사람들에게 책 제목은 낯설고 생뚱맞기만 하다. 스티커와 철학의 조합이라니. 그런 느낌은 ‘I ♥…’부터 ‘I don’t care what you love, what your other car is, or what you’d rather be doing(당신이 뭘 좋아하는지, 갖고 있는 차가 뭔지, 지금 차라리 뭘 하고 싶어하는지, 난 관심이 없어)’류의 긴 글까지 각양각색 스티커를 경험하는 미국인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스티커로 철학한다’는 저자의 말에 다가서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스티커의 짧은 문구를 철학의 관점에서 읽어낸다. 생활 속의 철학을 일깨우는 저자는 스티커에서 행간의 의미를 분석하고 철학적 논리를 펼친다.

그렇다고 난해한 철학 용어가 이어지는 딱딱하고 지루한 내용은 아니다. 스티커의 문구를 분류한 주제는 실재, 자아, 가치, 도덕, 신과 종교, 지식, 윤리, 언어, 정치와 사회 등 묵직하다. 그러나 저자 특유의 ‘스티커철학’은 사상가 칸트, 흄, 테레사 수녀뿐 아니라 슈퍼맨, 험프리 보가트 및 이웃집 이야기와도 버무려진다. 풍자와 유머가 더해지면서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아이가 타고 있어요(Baby on board)’란 스티커의 경우, 저자는 이 스티커가 안전을 기원하며 백미러에 매다는 행운의 장식품과 비슷하다고 지적한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하는 것이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성향, 심리학적 용어로 ‘행동 편향’ 때문이라는 것. 불운이나 실패를 겪을지언정 “그래도 최소한 노력을 했잖아”라는 편을 선호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또한 ‘걱정하지 말고 즐겁게 살아라(Don’t worry, be happy)’의 문구에선 행복학의 부상을 짚어내며 ‘행복이란 뭘까’ ‘당신은 행복한가’ ‘지금은 행복한가’의 의문을 던진다. 행복론에 대해 저자는 ‘이제 행복한가? 설령 아니라 해도, 걱정하지 마라’고 행복에 대한 압박감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제안한다.

이 밖에 ‘여기 있느니 차라리…(I’d rather be)’란 스티커에선 지하철은 물론, 소모임에서 휴대전화를 붙들고 시공간을 벗어나는 세태를 꼬집는다. 식사 도중 누군가와 통화하고 문자를 보내며 ‘차라리 휴대전화가 낫다’는 사람들에게 저자는 손에 잡힐 것 같지만 항상 달아나 버리는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대상에게 충실한 삶을 일깨운다.

‘나를 판단하지 마(Don’t judge me)’ ‘사이즈는 중요해(Size does matter)’ ‘책읽는 사람은 섹시하다(Reading is sexy)’…. 이 책에 소개된 110여종 스티커의 문구를 찬찬히 읽어 보는 것 자체가 흥미롭다.

신세미 기자 ssem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