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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한당들의 미국사 / 새디어스 러셀 지음, 이정진 옮김 / 까치

‘자유를 바라는 그대여, 가난에 찌들어 지친 이여, 나에게 오라. 고난에 처해 의지할 곳 없는 자들이여, 나에게 오라. 나는 황금의 문가에서 횃불을 들리라.’

미국 뉴욕 앞바다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 벽에 새겨진 글귀다. 자유와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자유가 오늘날의 미국을 있게 한 원동력임을 웅변하고 있다. 이런 미국을 있게 한 공로를 이야기할 때 초창기 미국의 역사서들은 위대한 정치인, 위대한 군인 등 주로 ‘위인들’을 중심에 올려놓았다. 이후 1960년대와 1970년대 들어 새로운 세대의 학자들은 노동조합 지도자, 페미니스트, 민권운동가 등 민중을 대변했던 인물들을 미국 역사의 중심에 놓기 시작했다. ‘아래로부터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미국의 역사학자인 저자는 그러나 한 단계 더 아래로 내려간다. 저자는 서론을 통해 “이 책은 불량한 미국인들, 즉 술꾼과 매춘부, 게으른 노예와 백인 백수, 범죄자와 탈선 청소년, 대담한 동성애자 등 미국의 사회적 규범 바깥에서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들이 어떻게 세상을 지금과 같은 형태로 변화시켰고, 새로운 쾌락을 창안했으며, 우리의 자유를 확대했는지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사회에서 주변인으로 머물며, 기존 주류 사회에 섞이지 못한 사람들에게서 미국이 누리는 자유의 기원을 찾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기존 주류 학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대담하고 발칙한 미국사라고 할 만하다.

책에 따르면 18세기 미국 도시에는 거리마다 부자, 빈자, 중간층과 인디언, 흑인, 백인, 남녀노소가 술을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고, 섹스를 하며, 정치 토론을 벌이고, 도박하며 두루 어울리는 공간이 있었다. 필라델피아에는 인구 100명당 술집 1개가 있었으며, 뉴욕에서는 뉴욕 인구를 동시에 수용하기에 충분한 술집들이 존재했다. 난잡한 술집문화는 권위와 기강을 부정했으며 모든 사람들의 자유를 확대시켰다.

특히 하층 계급이 출입하던 술집은 미국에서 최초로 인종 간의 만남이 공개적으로 이뤄진 장소였다. 연방정부가 강제력까지 동원해 흑인과 백인, 원주민들을 한데 모으기 몇 세기 전에 이미 그들은 함께 어울렸던 것이다.

1920년대에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된 춤은 성혁명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1924년 뉴욕에서만 600만 명의 남녀가 댄스홀을 찾았다. 17세에서 40세까지의 뉴욕 시민 중 10% 이상이 최소 매주 한 번씩은 춤을 추러 갔다. 이런 유행은 흑인과 백인을 막론했고, 이민자와 비이민자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인종에 해당됐다. 미국사에서 최초로 서로 어울려 춤을 추면서 자신들의 성적 매력을 발산하는 남녀의 행태가 널리 용인되게 됐다.

미국 사회를 변화시킨 소비혁명에는 갱스터들의 역할이 컸다. 갱스터들은 게이바를 열어 동성애자들의 숨통을 틔워줬고, 오락 영화를 제작해 일반 시민들에게 새로운 유형의 재미를 줬다. 저자는 갱스터들이 없었다면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라스베이거스의 스트립 지역은 한낱 사막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초기 재즈나 성인용 영화, 금주령 시기 동안의 술, 게이바 같은 여타 불법적인 대중 오락과 마찬가지로 도박 또한 사회 규범을 철저히 무시한 자들에 의해서 이익을 낳는 사업으로 발전했다. 그 중심에 갱스터들이 있었다.

그렇다고 저자가 이런 반항자들의 ‘혁명’을 전적으로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이 책 속의 영웅들이 미국을 장악했다면 혼란에 빠져 어느 누구도 안전하게 다니지 못하고, 쓰레기 수거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게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는 ‘선량한 사람들’ 즉, 사회의 수호자들이 자유의 적들이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주장할 수 없다고도 말한다. 이들은 핵심적인 사회적 기능인 안전과 안보, 공공위생 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의 주장은 ‘불량한’ 사람들이 기강을 세우려는 사람들을 대체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미국사에서 개인적 자유의 폭을 결정해 온 것이 이 두 세력 간의 투쟁이었다는 것이다”고 역설한다. 불량한 사람들인 불한당들과 사회질서를 유지하고자 했던 선량한 사람들 간의 대립에 의해 미국의 역사가 발전되고 추동돼 왔음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불량한 사람들, 비주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미국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김도연 기자 kdych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