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값비싼 고어텍스 아웃도어 제품의 가격 거품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21일 서울 동대문시장의 한 아웃도어 매장에서 여성 고객이 병행 수입을 통해 국내 시세보다 30%가량 싸게 판매되는 고어텍스 재킷을 살펴보고 있다. 곽성호 기자 tray92@munhwa.com

“한국에선 고어텍스 아웃도어 제품이 왜 이렇게 비싼가요? 등산 등 겨울 스포츠가 발달한 스위스에서 오히려 같은 브랜드의 거의 똑같은 제품이 20∼30% 저렴해 깜짝 놀랐습니다.” 다국적 정보기술(IT) 기업에 근무하는 남편을 따라 스위스에 거주하는 김진경(30) 씨는 최근 한국방문 중 아웃도어 매장을 방문했다가 제품을 구입하지 않고 빈손으로 발길을 돌렸다. 예상과 달리 한국의 아웃도어 제품 가격이 스위스보다 훨씬 비쌌기 때문이다. 김 씨는 “스위스에선 고어텍스 아웃도어 제품을 취급하는 매장 수가 훨씬 적은 데다 실제로 등산을 즐기는 사람들만 한정적으로 구입하는 경향이 있는데, 한국에선 가격이 비싸도 길거리에서 많은 사람이 착용하고 다녀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캐나다에서 대학을 마치고 귀국한 김모(여·29) 씨도 비싼 고어텍스 제품에 대해 의아하긴 마찬가지다. 김 씨가 캐나다에서 한국 돈 기준으로 30만 원가량을 주고 구입한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의 고어텍스 재킷이 한국에선 배로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 씨는 “도대체 한국에서 고어텍스 제품이 왜 더 비싼지 이유를 모르겠다”며 “한국에서 파는 고어텍스 제품에 거품이 많이 낀 것 같다”고 말했다.

22일 관련 업계 및 서울YMCA 등에 따르면 국내 아웃도어 열풍을 타고 사세가 급신장한 미국 고어사가 오히려 한국엔 다른 나라보다 고어텍스 원단가격을 비싸게 공급한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또 해마다 한국에서 광고선전비는 크게 늘렸지만 정작 기부엔 인색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아웃도어 제조사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세계 최대의 고어텍스 시장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고어사에선 오히려 소재의 국내 공급 가격을 일본보다 20∼30% 더 비싸게 책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물량을 더 많이 팔아주는 우리나라는 무시하고, 오히려 높은 경제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보다 작은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일본에 우리보다 수십%나 저렴하게 원단을 공급하는 것은 시장 논리에 어긋난다”며 “국내 업계가 (고어사의 눈치를 보느라고) 대놓고 불만을 표시하지는 못한 채 속으로 삭이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고어사에서 일본에 저렴하게 원단을 제공하는 이유를 신규시장 개척 차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또 이처럼 고어사가 우리나라를 역차별할 수 있는 배경엔 강한 시장 독점력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고어텍스를 납품 받기 위해선 고어사 본사의 승인을 받아야 할 정도로 엄격하게 제조사를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에서 영업하는 제조사로선 속수무책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국내 브랜드로 판매되는 고어텍스 아웃도어 제품가격이 상대적으로 해외보다 비쌀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이 때문에 국내에 수입되는 외산 고어텍스 아웃도어 브랜드 가격마저 해외보다 턱없이 비싸게 책정되는 관행이 생겨나고 있다.

실제 미국 현지에서 환율 1100원 기준으로 43만8900원에 팔리는 아크테릭스 알파FL재킷의 경우 국내에선 82만5000원에 팔리고 있었다. 또 같은 브랜드 피션SL재킷은 미국에서 76만8900원이었지만 국내에선 125만 원에 달했다. 파타고니아의 슈퍼알파인재킷은 미국에선 65만8900원인 반면, 국내에선 95만 원에 육박했다.

고어텍스 제품의 국내외 가격에 큰 차이가 있는 것에 대해 서울YMCA 관계자는 “국내 제조사로부터 청취한 결과 고어사에선 계약을 맺고 있는 제조사에 특정국가·특정공장에서 생산된 제품만을 써야 한다고 지정해주는 데다, 고어텍스 소재를 사용한 제품은 특정 가격 이하로 판매하면 안 된다는 특약을 조건으로 제시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고어코리아 관계자는 “기능성 소재의 선택은 개별 아웃도어 브랜드들의 결정사항이기에 고어사가 답변할 수 없는 사항”이라며 “같은 종류의 소재는 같은 공급가 책정을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고어텍스의 국내 공급가가 일본보다 20% 이상 더 비싸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고어코리아 측은 국내에서 영업하는 아웃도어 업체는 고어코리아로부터만 원단을 공급받게 돼 있어 고어재팬과의 거래가 불가능한 것은 사실이라고 답변해왔다.

한편 금융감독원의 3월말 결산법인 자료에 따르면 고어코리아는 국내의 아웃도어 열풍을 등에 업고 해마다 광고선전비용만 늘리고 정작 국내 기부에는 인색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광고선전비용도 약 49억 원, 46억 원, 59억 원, 89억 원으로 점차 늘었다. 하지만 기부금은 2008년엔 아예 없었고, 2009∼2011년까지 약 741만 원, 615만 원, 508만 원으로 액수도 적은 데다 그나마 해마다 줄어들었다.

김자혜 소비자시민모임 사무총장은 “고어사가 한국에서 거둬가는 수익에 비해 한국 사회에 대한 기여도가 낮은 게 사실”이라며 “결국 소비자들이 고어텍스 못지않게 좋은 소재의 제품이 많다는 것을 인식하고 ‘제값 주고’ 제품을 구입해야 고어사가 한국시장을 봉으로 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준영 기자 cjy324@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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