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13일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심장병원 수술실에서 박승정(오른쪽) 심장내과 교수(심장병원장) 팀이 82세 고령환자 이모(82) 씨에 대해 대동맥판막 스텐트 시술을 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하지만 이 씨가 고령이고 고혈압과 당뇨병 등 만성질환으로 인해 신체 기능이 많이 약해져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인공판막을 넣기 위해서는 가슴을 여는 대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수술 중 과다출혈로 인한 심장쇼크의 가능성이 예상됐다. 이에 박승정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심장병원장)는 스텐트(그물망)를 이용해 이 씨의 망가진 대동맥판막을 인공(돼지)판막으로 대체하는 비수술적 방식을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13일 오전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심장병원 수술실에서 이 씨에 대한 ‘대동맥판막 스텐트 시술’이 진행됐다. 박 교수팀은 이 씨의 오른쪽 대퇴부 동맥에 구멍을 낸 뒤 크기가 조금씩 커지는 와이어를 바꿔 넣으며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대퇴부동맥은 심장과 곧장 이어지는 혈관으로, 와이어는 1m 남짓한 혈관을 따라 들어가 이내 좌심실까지 닿았다. 혈관의 지름이 8㎜ 이상 넓어지자 박 교수팀은 스텐트가 달린 카테터를 혈관으로 넣어 심장에 도달케 했다. 압축된 스텐트 안에는 인공 판막이 설치돼 있었는데 카테터 나사를 풀자, 스텐트가 펼쳐지면서 인공판막이 이 씨의 망가진 대동맥판막을 밀어내고 자리를 잡았다. 박 교수팀은 특수 풍선을 이용해 그물망을 충분히 확장시켜 피가 새지 않게 단단히 고정했다. 1시간가량의 시술이 끝나고 엑스레이 화면을 통해 새로 자리잡은 인공판막이 피의 역류를 막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박 교수는 “노화로 인해 이 씨의 혈관에 칼슘이 다량 쌓여 있어 와이어로 길을 만들어내는 데 애를 먹었다”며 “시술이 잘 끝나 차차 환자의 가슴통증이 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이 씨처럼 대동맥판막이 망가졌음에도 신체 기능 약화로 인공판막 치환술을 받을 수 없는 환자들은 약물 치료로 생명을 연명하는 것이 최선의 치료였다. 대동맥판막협착증은 약물치료에 반응이 좋지 않아 환자의 절반은 5년 내 사망에 이르게 됐지만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하지만 최근 이 같은 대동맥판막 스텐트 시술이 국내에 도입돼 수술 불가능한 판막질환자에 대한 치료의 길이 서서히 열리고 있다. 환자들은 혈관을 통해 인공판막을 삽입함으로써 수술 없이도 새로운 판막을 얻을 수 있게 됐다.

그 시작은 서울아산병원이었다. 서울아산병원 심장병원 협심증·심근경색증센터는 2010년 2월 국내 최초로 대동맥판막 스텐트 시술을 도입해 수술을 성공한 바 있다. 이 시술은 2002년 프랑스에서 개발돼 전 세계 1만5000여 명의 환자에게 시행된 최신 판막 치료술이었지만 한국까지 전해지지 않고 있었다. 서울아산병원은 이후 총 54차례의 시술을 해 아시아 최대 시술 건수를 기록하는 한편, 2명을 제외한 52명에 대한 시술을 성공적으로 마쳐 96%의 시술 성공률을 보이고 있다. 시술 후 한 달간 사망자는 아직 기록되지 않았다. 초음파검사 결과, 환자들은 대동맥판막 입구가 기존보다 2배 이상 넓어지고 좌심실과 대동맥 사이의 압력차가 낮아지면서 온몸으로 원활한 혈액 공급이 가능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도 최근 그 안전성과 효과성을 인정해 대동맥판막 스텐트 시술을 신의료 기술로 공식 인정하기도 했다. 대동맥판막 스텐트 시술은 그동안 복지부의 인증을 받지 못해 국내에서는 시술이 활발하게 이뤄지지 못했지만 이제 판막질환에 대한 새로운 치료 패러다임으로 자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이렇듯 서울아산병원 협심증·심근경색증센터가 대동맥판막 스텐트 시술이라는 최신치료법을 빠르게 도입할 수 있었던 것은 국내 스텐트 시술 분야에서 명실상부한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센터는 심장 질환에 대해 연간 2000건 이상의 스텐트 중재시술을 시행하고 있고, 99% 이상의 세계적인 성공률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특히 가슴을 여는 수술적 치료만 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좌관동맥 주간부(관상동맥의 가장 크고 중요한 부위)에 대해 세계 최초로 스텐트 시술이 가능함을 밝혀냄으로써 학계를 놀라게 한 바 있다. 심장병원장이기도 한 박 교수는 이런 스텐트 관련 연구로 의학연구 분야의 세계 최고 권위지로 손꼽히는 NEJM(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국내 최다인 4차례 논문을 게재하는 기록을 세웠다.

서울아산병원 협심증·심근경색증센터는 국제적으로도 그 기술을 인정받고 있다. 1995년 시작해 올해로 16회째 서울아산병원 심장병원에서 열리는 국제 심포지엄 ‘혈관성형술 회의(Angioplasty Summit)’에는 전 세계에서 3500여 명의 관련 의학자들이 모여 최신 치료 기술을 공유하고 있고, 지난 2009년 시작한 자체 교육 프로그램(ACT·Asan medical center Cardiology Training program) 또한 현재까지 호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일본 등을 포함한 24개국 576명의 심장병 전문의들이 자비로 참가해 기술을 배워가고 있다. 이철환 협심증·심근경색증 센터장(심장내과 교수)은 “앞선 스텐트 기술을 통해 고령이나 수술이 불가능한 심장 질환 환자들에 대한 치료법을 개발해 나가는 것이 센터의 주 목표”라고 말했다.

유민환 기자 yoogiz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