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화가들 / 박정혜·황정연·윤진영·강민기 지음 / 돌베개

조선시대 수많은 어진(御眞·임금의 초상화)들이 제작됐지만 현재 남아 있는 것은 국보 제317호 ‘조선태조어진’(1872년 이모(移模)·전주 경기전 소재) 등 6점 정도에 불과하다. 수많은 조선왕조 어진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사실 50여 년 전만 해도 창덕궁 신선원전(新璿源殿)에 조선 왕 12명의 어진 46본(점)이 남아 있었다. 이는 1935년 창덕궁 신선원전에 봉안된 어진의 수리 기록인 ‘선원전영정수개등록(璿源殿影幀修改騰錄)’을 통해 확인된다.

이 어진들은 6·25전쟁 때 안전한 관리를 위해 부산으로 옮겨졌는데 1954년 12월 10일 용두산의 피란민 판자촌과 인접했던 보관 장소에 화재가 발생해 대부분 소실되고 말았다. 화재 현장에서 구해내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어진은 ‘태조어진’과 ‘영조어진’, ‘순조어진’(이상 1900년 이모), ‘익종어진’(1826), ‘철종어진’(1861) 등 모두 5점. 이 가운데 그나마 임금의 얼굴인 용안(龍顔) 부분이 남아 있는 어진은 ‘영조어진’과 ‘철종어진’ 2점뿐이다. 왼편으로 불길이 번지는 도중에 건져내 오른쪽 상단에 붙여놓은 표제는 손상되지 않아 어느 왕의 어진인지는 파악이 가능하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은 제목이 의미하듯, 조선시대부터 대한제국기(1897∼1910)를 거쳐 일제강점기까지, 왕실의 회화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사람(화가)’에 초점을 맞췄다.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 한국학진흥사업단의 왕실문화총서 발행 사업 중 왕실의 미술을 다룬 3번째 연구 결과물로, 앞서 출간된 ‘왕의 국가와 회화’ ‘조선 궁궐의 그림’을 잇는 마지막 책이다. 이로써 각각 ‘왕’과 ‘그림’, ‘화가’를 중심으로 살펴본 조선시대 궁중회화 3부작이 완결됐다.

4부로 구성된 책에서 화원(畵員)들의 로망이었던 임금의 초상화를 그린 어진화사(御眞畵師)를 다룬 윤진영 한중연 장서각 선임연구원은 “어진 소실 사건이 중대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문화재 수난사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며 “당시 부산으로 옮겨진 어진의 숫자와 화재의 원인, 화재를 진압한 이후 수습 과정 등 정확한 실상을 파악하려는 노력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연구 책임자인 박정혜 한중연 교수 등은 책에서 조선 초기 만들어진 도화서(圖畵署)라는 예조 소속 종6품 관청에서 일하던 기능직 장인인 ‘화원’에서부터 ‘어진화사’와 정조 대에 마련된 ‘규장각 자(차)비대령화원’, 대한제국기에서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정치적 혼란기에 예술가로서 폭넓은 활약상을 보인 ‘근대 전환기 화가들’까지, 조선시대 궁중화가의 삶과 작품세계를 꼼꼼하게 펼쳐 보인다.

장득만·장경주 부자로 대표되며 200년 이상 화원 가계를 이어온 안동 장씨 가문 등 조선 중·후기 40개 이상의 화원 집안에 대한 설명과 솜씨에 따라 왕의 얼굴을 그리는 주관(主觀) 화사와 의복과 신체를 그리는 동참(同參) 화사, 배경을 담당하는 수종(隨從) 화사로 나뉘는 어진 화사의 선발 과정과 이들의 작품 경향 등 흥미로운 내용이 많다.

최영창 기자 yc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