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 연합사’로는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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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상/한국안보문제연구소 이사장, 예비역 육군 중장

지난 10월 제44차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에서 ‘한미연합사 해체’에 대비해 ‘미니 연합사’ 신설을 합의했다고 한다. 그마저 없다면 ‘연합방위가 아니라 공동방위’에 불과하고 유사시 지휘 통일도 불가능할 테니 아예 없는 것보다는 좀 낫겠지만 절대로 오늘의 ‘연합사 체제’를 대체할 수는 없다.

사실 오늘의 연합사 체제는 지난 수십 년 한국의 안정과 평화를 보장하고 한강의 기적을 뒷받침해 왔다. 지금도 한국의 핵심적 억제력이요, 앞으로도 상당 기간 쉽게 대체할 수 없는 국가 생존의 안전장치이자 자유통일의 지주(支柱)다. 연합사가 없어도 한미동맹을 강화하면 된다고 강변(强辯)하지만 오히려 한미동맹이 칼집이라면 연합사가 그 칼날이다. 예컨대 억제는 본래 심리적인 것이기 때문에 북한의 전면 도발을 억제하고 핵위협에 대처하는 데는 연합사가 서울에 존재하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없다. 또 한반도 통일 과정에서 발생할 엄청난 정치·경제·군사적 소요를 감당해줄 수 있는 나라는 사실상 미국밖에 없고, 연합사는 그런 지원을 받아들일 양호한 통로이자 관리 기구다. 그뿐만 아니라 북한이 혹시 중국의 배타적 영향력 하에 들게 되면, 아니 설사 자유통일이 된 후라도 욱일승천(旭日昇天)하는 중국의 기세 속에서 자유대한으로 살아남는 데 연합사 체제보다 더 확실한 수단이 있을 것인가?

그런데 연합사의 이런 전략적 기능과 가치는 주로 ‘튼튼한 한·미 군사동맹과 그 동맹이 세계 최강 미국군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음을 가장 분명하게 ‘증명’해 주는 ‘미국인 4성(星) 연합사령관’의 존재에서 비롯된다. 따지고 보면 유사시 ‘미국의 대규모 전력 증원’이 계획되고 연합사가 사실상 ‘미국의 자동개입 장치’ 효과를 갖는 것도 그 영향이었다. 심지어 과거 한·미 간의 극심한 정치적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지 않았던 데도 알게 모르게 미군 연합사령관의 역할이 유용했었다. 이 모두 ‘한국군 장성’을 사령관으로 하는 미니 연합사로서는 전혀 가능하지 않은 기능인 것이다. 한미동맹도 강화되기보다는 사실상 동맹 자체가 형해화(形骸化)하고 말 가능성이 더 크다. 오죽하면 ‘연합사 해체 반대 서명’에 1000만이 넘는 국민이 동참했고, 지금도 지난 13일 재향군인회 원로들이 한목소리로 ‘연합사 해체 재연기’를 호소하고 있겠는가?

더욱이 지금은 더할 수 없는 대도전과 기회의 시대다. 일찍이 골드만삭스도 단언했듯이 우리가 잘만 하면 통일 번영의 최선진국으로 도약할 수가 있지만, 잘못하면 특히 북한의 도발 역량과 중국의 팽창주의적 야심이 결합되면 장기적으로 우리가 살아남기 어려울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다. 한미연합사라고 영구불변일 수는 없지만 하필 이런 때에 해체한다? ‘미니 연합사’로 호도(糊塗)하려 해도 한반도의 불안정성을 높이고 자칫 정말로 북한의 오판을 초래하거나 자유통일은커녕 결국은 우리의 미래가 없어질지 모른다.

물론 이제 새삼 되돌린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지도자가 직접 나서면 아직은 가능하지 싶다. 없던 것도 만들었는데, 워싱턴에도 연합사의 가치를 중시하는 전문가들이 하나둘이 아니고 연합사 ‘유지’가 ‘해체’보다는 한미동맹의 발전이나 미국의 경제와 안보에도 더 유리한 측면이 적지않은 터에 왜 불가능하겠는가? 아예 무효화하는 것은 몰라도 시기와 조건 등의 수정·보완 정도는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다만 낮은 국방비와 턱없는 병력감축 계획 같은 것을 재검토하고 일본만큼은 아니더라도 방위비 분담에도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한다든지 해서 한국의 소극적 안보 의지에 대한 의구심을 씻어내고, 나아가 ‘전략동맹국’ 한국의 동맹적 가치에 대한 기대를 높이는 등 워싱턴의 공감과 감동을 이끌어내는 노력 정도는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지금은 어떻게든 연합사로 연결된 ‘구조적인 한미동맹 체제’를 더욱 강화하고, 자유통일을 내다보는 대(大)전략적 차원에서 그 내실을 다져야 한다. 이 중차대한 문제를 이렇게 어설프게 넘기고 말면 우리 아들딸들의 미래에 헤어나기 힘든 함정을 파는 게 될 것이다.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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