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울성모병원 간담췌암센터 회의실에서 윤승규(오른쪽 여섯번째) 센터장의 주도하에 소화기내과 등 7개과 교수 20명이 모여 간암환자의 치료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제공

간은 ‘침묵의 장기’다. 인체에서 가장 큰 단일 장기임에도 90% 가까이 간이 망가져도 환자가 이를 자각하지 못할 때가 많다. 국내에 매년 약 1만5000명의 간암 신규환자가 발생하고 있지만 이들 중 70%는 이미 암세포가 주변 장기로 전이된 암 3기 이상의 상태에서 병원을 방문한다. 국내 간암 환자의 5년 생존율(25.1%)이 주요 암의 평균 5년 생존율(62.0%)보다 현저히 낮은 이유도 조기에 치료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간암은 조기 발견이 쉽지 않은 만큼 치료의 중요성이 크다.

더욱이 간에서 생겨난 암세포가 폐나 뼈 등 다른 인체 부위로 전이됐다는 것은 단순히 암세포를 절제하는 수술만으로는 암을 완치할 수 없는 상황임을 의미한다.

문제는 암세포의 위치와 크기, 개수, 환자의 건강 상태에 따라 치료법이 크게 달라진다는 점이다. 간암의 치료법은 크게 수술과 비수술 두 가지로 나뉘지만 어떤 환자에게 어떤 치료법을 써야 할지는 구분이 쉽지 않다. 환자에게 적합한 치료 방식을 선택하고, 나아가 수술과 비수술적 치료 방식을 유기적으로 연계해 환자를 관리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해진다.

지난 19일 찾아간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울성모병원 간담췌암센터 회의실. 윤승규 간담췌암센터장(소화기내과 교수)의 주도로 간담췌외과와 영상의학과, 방사선종양학과, 중재방사선과, 병리과, 종양내과 등에 소속된 20명의 교수가 한데 모여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들은 환자의 자기공명영상(MRI)과 환자기록부 등을 보며 서로 의견을 공유하며 적합한 치료법을 찾아 나갔다. 간암 3기 A(56) 씨에 대해서는 판단이 갈렸다. 암세포 크기가 6㎝로 큰 점을 들어 일부 교수들은 비수술적 치료법 중 하나인 ‘간동맥 화학 색전술’을 통해 암세포를 줄여나가는 것이 좋다고 진단했으나, 다른 교수들은 암세포가 크더라도 개수가 하나고 위치가 수술에 적합하기 때문에 절제술을 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결국 20분간의 논의 끝에 의료진은 환자의 간 기능 상태가 좋지 않고 절제술 후에도 암 재발률이 높을 것이라는 점을 들어 A 씨를 비수술적 방식을 통해 치료하기로 결정했다.

서울성모병원 간담췌암센터의 장점은 이렇듯 한 교수의 판단이 아닌, 여러 교수들의 협진을 통해 환자의 치료법이 선택된다는 점이다. 소화기내과 등 7개의 과로 구성된 의료진은 일주일에 두 번씩 모여 환자에 대한 토론을 벌인다. 이런 다학제적 시스템은 오진의 가능성을 줄이고 환자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도록 도와준다.

윤 센터장은 “대다수의 병원들이 협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명목상으로 존재할 뿐 각 과가 서로 소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우리 센터는 이를 막기 위해 ‘무조건적인 협진’을 기조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협진을 통해 환자를 진단한 이후에는 수술 혹은 비수술 치료에 들어간다. 유영경 서울성모병원 간담췌외과 교수는 간암의 수술적 분야를 지휘하며, 암세포 절제술을 시행한다.

유 교수는 복부에 한 개의 수술 구멍만을 내는 ‘단일통로 복강경’ 수술을 주로 이용한다. 기존 복강경 수술은 배에 3∼4개의 구멍을 뚫는 데 반해 유 교수는 배꼽 부위에 1∼2㎝ 정도의 작은 구멍만을 내서 수술하는 방식으로 상처 부위를 최소화하고 입원 기간도 단축시키고 있다. 수술 후 3년 생존율도 90%를 웃돌 만큼 결과가 좋다. 유 교수는 이런 수술 방식으로 담낭(쓸개) 절제 400례, 간 절제 130례, 부신과 비장 절제 20례 등 총 550례의 수술을 시행했고, 이 중 간 절제 분야는 국내 최다 수술 기록을 가지고 있다.

간암 환자의 비수술적 분야는 윤 센터장을 비롯해 송명준, 최종영, 배시현 교수(이상 소화기내과), 천호종 영상의학과 교수가 담당하고 있다. 비수술 치료는 3㎝ 이하의 암세포가 있을 경우 고주파 열 치료를 통해 암세포를 괴사시키는 방식을 쓰고, 크기가 크거나 암세포가 여러 개일 경우 간동맥 화학 색전술(리피오돌 조영제에 항암제를 섞어 주입하는 방법)을 시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서울성모병원 간담췌암센터는 이외에도 새로운 항암 치료법을 연구 개발해, 임상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의료팀은 올해 초 약물 방출성 미세구슬을 이용한 새로운 간동맥 화학 색전술(일명 미세구 색전술)을 개발해 환자의 평균 생존기간을 7개월 늘리는 임상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미세구 색전술은 객관적 치료반응률도 81.6%로, 기존 색전술(49.4%)보다 월등히 높았다.

또한 이들은 기존의 항암치료법보다 생존기간을 2.3배 연장하는 ‘메트로놈 항암치료(Metronomic chemotherapy)법’을 개발하기도 했다. 기존 항암치료법은 한 달에 한 번씩 최대량의 항암제를 몸에 투입하는 방식이어서 항암제 독성과 내성으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곤 했다.

그에 비해 메트로놈 항암치료법은 낮은 용량의 항암제를 1주일에 1회씩 투여해 신생혈관 생성을 억제시키고 종양만을 선택적으로 괴사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메트로놈 항암치료법을 통한 환자의 평균 생존 기간이 261일로, 비교군(112일)보다 2.3배 높았다.

간 절제나 간동맥 화학 색전술로도 간암 치료가 어려울 경우에는 간을 이식하는 방법이 남아 있다. 김동구 간담췌외과 교수가 이끌고 있는 간 이식 분야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이식환자만을 위해 중환자실과 수술실, 병동을 분리해 운영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김 교수는 1993년 첫 간 이식에 성공한 이래 최근까지 700례의 간 이식 수술을 시행하면서 2001년 간·신장 동시이식 성공, 2002년 골수 이식 후 간 이식 성공, 2010년 혈액형 불일치 간 이식 성공 등 굵직한 기록을 이어오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간 이식 팀의 수술 성공률은 95%로, 국내 평균 간 이식 성공률(89.5%)을 상회하고 있다.

유민환 기자 yoogiz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