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트라우마 / 최형두 지음 / 위즈덤하우스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의 강경노선, 일본의 군사대국 야욕과 핵무장 가능성, G2로 떠오른 중국의 군사력 팽창 등으로 동북아의 안보지형이 요동치고 있다. 해방 이후 현대사를 보면 언제나 긴밀하고 튼튼한 한미관계가 한반도 안보의 기초가 돼 왔다. 동북아 국가들 사이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시점에 차기 정부의 미국관도 주목된다. 문제는 한미관계에 대한 편향성이나 근거 없는 미국관, 대충 때려잡아서 미국의 정책을 판단하는 태도 등은 대미정책의 실수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기자, 워싱턴특파원, 논설위원으로 20년간 기자생활을 한 저자는 냉정한 시선으로 한미관계 진실을 추적해왔다. 한미 간 소통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적절한 시점에 이 책이 나온 셈이다.

책의 미덕은 한미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입체적이라는 점이다. 비밀 해제된 안보문서를 샅샅이 조사하고 브루스 커밍스, 임마누엘 월러스타인, 로버스 스칼라피노 등 책으로만 접하던 석학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냈다. 데이비드 스트로브, 로버트 갈루치, 즈비그뉴 브레진스크, 브렌트 스코우크로프트 등 정책결정자와 안보전략자도 인터뷰했다.

거대하고 복잡한 한미관계사를 압축적으로 정리하면서 예리한 통찰력을 발휘한다. 저자는 미국 정책에 일관된 계획성이란 없었고, 한미사의 큰 사건들이 놀랄 정도로 우연과 임기응변의 결과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한국은 버림받을까 무서워했고, 미국은 잘못 엮일까 두려워했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저자는 “남한과 미국의 동맹은 냉전의 산물이었다”는 데이비드 핼버스탬의 묵중한 저서 ‘콜디스트 윈터’의 한 구절도 인용한다.

책에 따르면 이승만 전 대통령은 미국에 너무나 불편하고 골치 아픈 지도자였다. 1953년 10월1일 한국과 미국은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다. 백선엽 당시 육군참모총장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백악관에서 만났을 때 대통령은 이 조약에 대해 난색을 표명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의 벼랑 끝 전략은 성공을 거뒀고,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 이후 2011년까지 58년 동안 대한민국은 19세기 말 개항 이후 처음으로 외세의 침탈이나 전쟁이 없는 안정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

책은 한미상호방호조약을 둘러싼 박정희의 구애가 얼마나 간절했으며 미국은 이를 얼마나 당혹스러워했는지를 파헤치고 있다. 전두환과 김대중을 둘러싸고 미국 외교라인이 얼마나 곤혹스러웠는지, 북한이라는 시한폭탄에 대한 미국의 불편함이 한미 외교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등이 철저한 자료검증과 인터뷰를 통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한류파워와 경제 성장으로 한국은 이제 세계가 주목하는 국가가 됐다. 미국에 대한 피해의식을 버려야 하며 대등한 한미관계를 모색하기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저자는 한국사회가 미국에 대한 트라우마(정신적 외상)와 콤플렉스(열등감)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진수 기자 jiny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