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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호/前 안기부 차장, 울산대 초빙교수

1953년 휴전으로, 끔찍했던 6·25 전쟁의 총성이 멈췄다. 그러나 냉전이란 이름의 새로운 양상의 전쟁이 바로 이어졌다. 냉전은 대개 ‘조용한 전쟁(Silent Warfare)’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남북한 간 냉전은 열전에 가까운 아슬아슬한 폭력적 사태가 끓임없이 이어졌다. 60년 남북 냉전사는 북한이 저지른 수많은 테러와 폭력·납치·살상 사건으로 점철돼 있다. KAL기 폭파, 아웅산 테러, 연평해전, 그리고 2010년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등 도발 리스트는 다양하고 길다. 북한이 노려 왔던 것은 한국의 레짐 체인지였고 한반도 전체의 공산화였다.

그래서 남북한 냉전은 북한의 공세, 한국 수세라는 기본 구도로 전개됐다. 냉전은 기본적으로 정보전이다. 북한 공세, 한국 수세라는 냉전의 기본 패턴이 정보전에서도 그대로 적용됐다. 한국의 정보기관은 늘 수세적이었고 열세를 면치 못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남북한 정보 환경이 극도로 비대칭적이었기 때문이다. 정보 타깃으로서 북한은 최악이다. 반대로 한국은 더할 나위없이 좋은 낙원이다.

정보 업무의 기술 측면에서 보통 스파이 포섭 공작의 요소로 4가지를 든다. 영문으로 ‘MICE’로 표현 되는 요소다. 즉, 돈(Money), 이념(Ideology), 약점 폭로 위협(Compromise), 자만심(Ego)을 말한다. 이 요소들은 이론적으로는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도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그러나 북한 주민에 대한 접근이 근본적으로 차단돼 있다는 점과 노출 시 가족과 친족까지 처벌하는 가혹한 강압 체제는 북한 주민의 협조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차단한다. 북한 내 우리의 인적정보 자산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반면 한국 사회는 북한 정보기관이 마음대로 휘젓고 활동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돼 있다. 또한, MICE 요소가 먹힐 여건이 즐비하다. 특히 자생적 주사파(主思派)의 존재는 북한 정보기관엔 황금어장 여건이다. 이번에 국회까지 진출한 종북(從北) 세력의 정치적 득세는 남북 정보전에서 북한 정보 당국의 우세를 단적으로 상징한다. 물론 다 아는 바대로 남북한 간 경제력 격차는 40 대 1의 수준을 넘는다.

그럼에도 북한은 대남 군사적 위협을 격화하면서 정보전에 더욱 치중하고 있다. 북한 정보 당국은 이렇게 정세 판단을 하고 있을 것이다.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한국의 공안기관은 이미 무력화됐다.’ ‘정치 분위기를 보면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같은 좋은 시절이 다시 올 것이다.’ ‘주사파 세력이 이젠 대한민국 심장부인 국회에 교두보를 확보할 정도로 약진하고 있다.’ 북한이 대남 적화(赤化)전략에 희망을 걸 만한 정세 진전이다. 북한이 대한민국을 적화할 수 있다는 망상(妄想)을 품고 있는 이상 진정한 남북관계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최근 야당 대선 예비주자들은 저마다 모두 한반도 평화를 위해 새로운 대북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각오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그럴 듯하게 보이는 대북정책 수사(修辭)가 아니다. 북한의 적화 의지 빌미가 되는 종북 세력과 같은 국내 여건을 철저히 제거하는 것이 먼저다. 내부에 북한을 추종하고 돕는 세력을 방치한 채 대북정책을 거론하는 것은 탁상공론(卓上空論)에 불과하다.

국가보안법은 냉전 상황에서 나라를 지키는 최소한의 법적 장치다. 국가 정보요원과 대공(對共) 수사관들은 냉전 전사다. 천신만고 끝에 검거한 간첩이 몇 년 뒤 국회의원이 돼 국가보안법을 조롱하고 담당 정보요원과 수사관들을 허탈케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재발돼선 안된다. 사회 전체가 합심해서 한반도 냉전의 현실을 바로보고 국가 공안(公安) 기능과 정보 기능의 강화에 나서야 한다. 강력한 공안 기능이 올바른 대북정책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