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통신 / 세르주 브롱베르제 엮음, 정진국 옮김 / 눈빛

프랑스 종군기자들이 한국전쟁에 대해 쓴 기사를 모은 책이다. 그동안 한국전쟁에 대한 책들은 숱하게 쏟아져 나왔다. 전쟁의 기원을 분석한 책에서부터 전개 과정과 국제적 역학관계에 끼친 영향 등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돼 왔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전쟁에 관한 자료들은 부족한 형편이다. 무엇보다 실제 현장에서 벌어진 사실들(facts)과 당시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들은 미흡하기 그지없다.

지난 1999년 AP통신의 노근리사건 특종보도는 이 같은 현상을 잘 보여준다. 거의 50년이 지나서야 당시의 구체적 실상이 드러났던 것이다. 따라서 한국전쟁을 직접 목격하고 취재했던 기자들의 기록은 여전히 소중하며 유효하다. 이 책은 그 같은 기대를 충분히 채워주는, 그야말로 생생한 기록이다.

저자들은 세르주 브롱베르제·필리프 도디·앙리 드 튀렌·장 마리 드 프레몽빌 등 AFP통신과 ‘르 피가로’지 소속 특파원들. 이들은 1950년 6월25일 한국전쟁 발발 당일에서부터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 중공군 개입과 1·4후퇴, 그리고 1951년 3월 서울을 재탈환하기까지의 과정을 야전에서 직접 발로 뛰며 기사를 작성했다. 전선 이곳저곳에 흩어져 르포기사로 작성, 송고한 것을 세르주 브롱베르제가 한데 묶어 1951년 프랑스에서 책으로 펴냈다.

저자들이 종군기자로 활동한 기간은 사실상 한국전쟁의 절정기였다. 이들의 취재 이후 전쟁은 고지전으로 전개돼 삼팔선을 오르내리며 지루하게 이어졌다. 지금까지 국내에 공개된 외국인의 한국전쟁에 대한 기록은 주로 미국 입장에서 씌어진 것이었다. 이에 비해 저자들은 비교적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사를 쓰려고 한 흔적이 엿보인다. 이들의 기사에서 새롭게 확인할 수 있는 사항들은 이런 것이다.

우선, 산악지대가 많은 한국에서 미군의 무지막지한 물량 공세는 오히려 전세를 불리하게 만들었다는 점. 보병전을 전개해야 할 곳에서 포병 및 전투기의 근접 항공지원에 주로 기댐으로써 전술적 오류를 범했다는 지적이다. 반면, 장비가 부족하고 훈련이 덜 된 한국군이 겪어야 했던 고충은 심각했다.

저자들은 또한 전쟁의 참화에 신음하는 한국인들에 대해 시종일관 연민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특히 전란에 휩싸인 아이들과 피란민에 대한 따뜻한 시각이 돋보인다. 이들은 평양 수복 직후 평양 시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인들을 심도 있게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등 보다 심층적인 취재활동을 펼쳤다.

아울러 한국전쟁에 뛰어든 종군기자들의 활동상을 기록한 대목도 매우 흥미진진하다. 미국 여기자 마거릿 히긴스가 일으킨 파문과 영국 윈스턴 처칠 수상의 아들 랜돌프 처칠의 ‘화려한’ 등장 등 종군기자 세계에서 목격한 일화들은 이 책이 아니면 보기 힘들 것이다. 예컨대 이런 대목. “소란스러운 미국과 프랑스 기자들 틈에서 영국 기자들은 똘똘 뭉치고 차분하게 위엄을 지켰다. 그들은 당황하는 법 없이 새 위스키 병을 줄줄이 따면서 항상 냉소적인 유머를 쏟아냈다. 타임스의 이안 모리슨은 그 와중에도 셰익스피어를 읽었다.”

무엇보다도 종군기자들은 비싼 대가를 치렀다. 한국전쟁 발발 이후 석 달 만에 열두 명이 희생됐다. 제2차 세계대전을 통틀어서도 특파원 희생자는 40명이었다. 저자들은 “보기보다 위험한 이 전쟁에서 특파원 17명이 사망했고 3명은 포로로 붙잡혀갔고, 수십 명이 부상했다”고 밝히고 있다. 책의 화보 중 영국 ‘픽처 포스트’지의 종군사진가였던 버트 하디의 사진 11점도 국내 최초로 공개돼 눈길을 끈다.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