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서울 송파구의 한 차도에 설치된 과속방지턱을 지나가는 차량들의 모습이 반사경에 비치고 있다. 심만수 기자 panfocus@munhwa.com

지난 4월 경남 양산시의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오던 손모(43) 씨는 주차장 오르막길을 올라오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과속방지턱 때문에 차가 파손되는 낭패를 봤다. 오르막길에 갑작스럽게 등장한 과속방지턱을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넘는 과정에서 차에 충격이 가해지는 바람에 전면 헤드라이트가 깨져버린 것이다. 손 씨는 “시속 20㎞ 정도의 저속으로 달리고 있었지만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상황에서는 과속방지턱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며 “보험회사 등과 상의해 봤지만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고 있는 법 규정이 없어 자비로 수리해야 할 상황”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보행자 안전이나 과속으로 인한 사고 등을 막기 위해 도로 곳곳에 설치돼 있는 과속방지턱이 규정에 어긋나거나 무분별하게 설치된 곳이 많아 운전자들의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

어린이 등 보행자들의 안전 및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꼭 필요한 과속방지턱이지만 불필요한 곳에 설치되거나 잘못된 설치 등으로 제 기능은 발휘되지 못한 채 운전자들에게 불평만 사고 있는 것이다. 특히 공공도로 이외 지역의 경우 규정을 지키지 않고 설치된 과속방지턱의 사후관리 또한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시민들이 가장 많은 불만을 제기하고 있는 것은 아파트 단지나 각종 상업시설 등의 과속방지턱이 도로 사정과 상관없이 무분별하게 설치돼 있다는 점이다. 지난 4일 많은 차들이 오가는 서울 송파구의 한 대형병원 내 차도에는 과속방지턱이 횡단보도와 바로 붙어 있어 사고예방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과속방지턱을 통해 속도를 줄여도 바로 앞이 건널목이라 사람이 지나가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을 정도로 아찔한 위치에 시설이 설치된 것이다.

현재 국토해양부의 ‘도로안전시설 설치 및 관리 지침’에 따르면 건널목 20m 이내에는 과속방지턱을 설치할 수 없도록 돼 있다. 병원을 방문한 택시기사 김모(58) 씨는 “생색내기용 과속방지턱도 아니고, 사고 나기 딱 좋은 위치”라며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구급차도 많은데 급해서 조금만 속력을 낸다면 과속방지턱을 지나 보행자와 부딪히기 십상”이라고 비판했다. 인접해 있는 또 다른 도로에서는 약 200m 남짓한 구간에 무려 6개의 과속방지턱이 설치돼 있어 지나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공공도로 인근에 설치된 과속방지턱의 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법령에 따르면 과속방지턱은 폭 3.6m, 높이 10㎝를 초과할 수 없다. 그러나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노상에 설치된 과속방지턱은 대부분 높이가 12∼13㎝에 달해 조금만 빠른 속도로 넘었다가는 차에 충격이 가해져 운전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매일 이 길을 지나친다는 박모(66) 씨는 “차가 낡은 편인데 과속방지턱이 높아 차에 무리가 갈까 무섭다”며 “최근엔 과속방지턱이 설치돼 있지 않은 가장자리 주차공간을 이용해 도로를 통과하고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 외에도 과속방지턱이 있는 지역은 해당 안내 표지판이나 서행 표시를 해 줘야 하지만 대다수 지역에 이 같은 안내 표지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또 야간에 운전자들이 쉽게 구별할 수 있도록 황색과 백색으로 된 야광도료를 칠해야 하지만 설치된 시설 상당수는 야광이 되지 않는 페인트를 사용하거나 칠이 벗겨져 과속방지턱임을 식별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이처럼 과속방지턱 설치와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은 현행 법령이 과속방지턱의 운영 전반에 관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도로안전시설설치 및 관리지침에 따르면 현재 과속방지턱 설치 기준을 준수해야 하는 것은 국도와 지방도 등 공공도로에 한정돼 있다. 아파트 내 도로나 지하주차장, 대형건물 내 도로 등의 과속방지턱은 법 적용을 받지 않아 주먹구구식으로 설치되고 있는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공공도로가 아닌 지역에서의 과속방지턱 설치 문제는 결국 해당 소유주에게 맡기고 있다”며 “특별한 지도나 제재를 가하는 것은 정부 권한 밖”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건축안전시설물에 관한 법률에 해당 문제가 제기됐다면 모를까 현재 상황에서 사유도로 내에서의 과속방지턱 문제는 제재를 가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법령의 적용을 받는 도로상에서도 과속방지턱의 잘못된 설치 자체는 제재를 가하지 못하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잘못된 위치에 과속방지턱을 설치하거나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을 경우 특별한 규제나 단속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발생한 뒤 책임소재를 따질 때에만 이 같은 사안이 참고가 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현재 잘못된 과속방지턱에 대한 단속을 하지는 않고 있는 상황”이라며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해당 시설이 규정에 위반돼 있다면 이에 대한 책임을 일부 지는 정도”라고 말했다.

박준우 기자 jwrepublic@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