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정의 역사 / 로버트 P·크리스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오늘날 사람들은 고기든 채소든 만 원을 주고 정확히 만 원어치를 받는다고 믿는다. 사람들은 감독관이 정기적으로 저울을 점검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그랬을까. 아니다. 성경에서는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이 곧 정의라고 말한다. 정의의 여신은 눈을 가리고 저울을 든 모습으로 묘사되며, 신은 “공평한 추와 공평한 에바(건량 단위)와 공평한 힌(액량 단위)을 이용하라”고 말한다. 그만큼 눈속임이 많았다는 얘기다.

제목 그대로 측정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세상 만물이 척도가 되던 시절 측정의 의미에서부터, 음률에서 길이를 끌어낸 고대 중국, 자신들의 문화와 지식의 총체를 저울추에 담았던 서아프리카의 아칸족, 삶과 노동에 뿌리박은 중세 유럽의 도량형, 그리고 불과 200여 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전 세계 측정 체계를 통일한 프랑스의 미터법, 지구 자오선, 빛의 속도 등 자연에서 불변의 척도를 찾으려는 근현대 과학자들의 열정 등을 드라마틱하게 엮고 있다. 측정의 역사를 단순히 연대기적으로 풀어 쓰지 않았다. 저자에게 측정은 인류 역사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인 까닭에 측정이라는 딱딱한 주제를 다채로운 인물들의 삶과 사회 문화, 정치, 역사, 과학사 등 다양한 측면에서 파고든다.

책에 따르면 최초의 측정도구는 인체였다. 대부분의 문화권에서는 ‘발’ 단위가 있으며, 발 길이는 ‘손가락’ 굵기로 나누기도 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발 길이를 ‘푸스’, 손가락 굵기를 ‘닥틸로스’라 하며 1푸는 16닥틸로스다. 중국에서는 발 길이를 ‘척’, 엄지손가락 굵기를 ‘촌’이라 하며 1척은 10촌이다. 길이 단위로 쓰는 신체 부위로는 발 말고도 손가락, 손톱, 머리카락, 손바닥, 아래팔, 뼘, 걸음 등이 있다. 하지만 이는 ‘임시방편의 척도’였다. 측정이 진화하면서 인체 등 주변 사물을 임시변통한 척도가 아니라, 표준화된 체화 척도, 즉 내 발이 아니라 ‘피트’가 쓰이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제 표준은 자연이나 공통체에 속한 것이 아니라 고유한 정체성과 역할을 부여받은 특별한 인공물이 됐다. 표준을 소유한다는 것은 정치 사회적 권력, 즉 왕의 권위와 신의 위엄을 나타내는 징표가 됐다. 표준의 소유가 권력이 된 것이다. 책에 따르면 근대 초기 유럽에서는 상거래와 조세에 쓰는 도량형을 누가 통제할 것인가를 놓고 지방 정부와 중앙 정부가 갈등하다 정치 투쟁이 벌어지고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저자는 “측정 이야기는 세계화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 준다”고 말한다. “아주 먼 옛날에는 지역마다 ‘정오를 알리는 대포’가 있었다. (중략) 중요한 가치일수록 이를 재는 척도가 더 정교하고 정밀하며 더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더 많은 규제를 받았다. 하지만 200여 년밖에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시실상 이 모든 체계가 하나의 ‘보편적’ 측정 체계로 통일됐으며, 사실상 모든 나라가 받아들였다. 이는 전 세계 언어가 통일되는 것만큼이나 놀라운 일이다.”

현대 사회의 측정 경관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은 특히 곱씹어 볼 만하다. “사람들은 존재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측정할 수 있다고 생각해 지능이나 행복, 자존감, 교육 수준처럼 근본적으로 측정 불가능한 것까지 측정하려 들고 이것이 전부라고 착각한다.”

김도연 기자 kdych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