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국 대사관에서 계좌 잔액을 물어보는 전화가 자주 오지만….’

2조 원대 뭉칫돈이 들어있는 것으로 알려진, 우리·기업은행에 개설된 이란중앙은행 계좌가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이 계좌는 우리·기업은행과 이란중앙은행의 계약에 따라 이란에 경제 제재 중인 미국 등에 잔액 등 계좌정보를 알려주지 못하게 돼 있다. 계좌를 유치한 우리·기업은행은 저비용성 요구불예금이 크게 늘어나 요구불예금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는 다른 은행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지난 2010년 미국의 이란 경제 제재 이후 미국의 요구로 이란과의 금융거래를 중단했다. 대신 SK에너지,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사들이 이란에 지급할 원유수입 대금을 우리·기업은행에 개설된 계좌에 넣어주고, 2000여 개의 우리나라 중소 수출기업들이 이란에서 받을 수출대금을 해당 계좌에서 꺼내 쓸 수 있도록 했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 제재로 달러 거래가 힘들어지자 우리 정부가 미국, 이란 등과 협상을 벌여 우리·기업은행에 계좌를 개설해 원화로 거래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2010년 9월17일 우리·기업은행은 이란중앙은행과 계좌 개설에 관한 계약을 체결했다. 해당 계좌도 ‘금융실명제법’ 적용을 받아 미국 정부 등이 해당 계좌의 잔액 등 계좌 정보에 대한 문의를 해도 은행은 계좌 정보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계약을 맺었다. 은행 관계자는 “미국 대사관 등에서 자주 이란중앙은행 계좌 잔액에 대한 문의가 오지만, 계약에 따라 계좌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기업은행은 이란중앙은행 계좌 개설 이후 뒤돌아 웃음짓고 있다. 대 이란 수출액보다 수입액이 더 많아 이란중앙은행 계좌에 잔액이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가만히 앉아서 저비용성 요구불예금을 유치하고 있는 셈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란중앙은행 잔액 대부분이 예치된 우리은행의 요구불예금은 지난해 3조4002억 원이 늘어났다. 이 기간 이란중앙은행 계좌 잔액 등에 힘입어 4대 은행 중 한 곳인 하나은행의 요구불예금 총 잔액(2조9513억 원)보다 많은 금액을 늘린 것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다소 조심스러운 측면도 있지만, 이란중앙은행 계좌 유치로 저비용성 예금이 크게 증가해 은행 살림에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손기은 기자 s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