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보라매공원 잔디밭에서 개들이 목줄이 풀린 채 뛰어다니고 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munhwa.com

서울 광진구 자양동에 사는 배모(여·35) 씨는 주말을 맞아 6세 된 딸과 함께 인근 공원에 산책을 나갔다가 목줄이 풀린 개를 만나 곤혹을 치렀다. 개가 어린 딸에게 달려와 계속 짖어댔기 때문이다. 곧 주인이 와서 “죄송하다”고 말한 후 개를 데리고 갔지만 배 씨는 산책은 고사하고 놀란 딸을 데리고 병원으로 가야 했다. 배 씨는 “애완견을 데리고 공원에서 산책할 때 목줄을 묶지 않으면 과태료를 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실제로는 공원 안의 개들 대부분이 목줄이 풀려 있다”고 하소연했다.

지난 28일 오후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 위치한 보라매공원에는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시민들로 가득했다.

개를 데려온 시민들은 공원 관리반원이 있는 출입구와 길가에서는 목줄을 잡고 이동했지만 잔디밭에 자리를 잡자 이내 목줄을 풀었다. 풀려난 개들은 주변 다른 시민들에게 가서 피해를 주기도 했지만 적발하는 관리반원은 보이지 않았다.

개를 데려온 유모(22) 씨는 “집에서 데려올 때는 목줄을 묶어서 왔지만 잔디밭에서까지 답답하게 묶어두기 싫어 풀어줬다”며 “우리개는 사람을 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터넷의 애완견 관련 동호회나 카페 게시판에는 ‘산책할 때는 강아지 목줄 좀 부탁해요’라는 제목의 글이 꾸준히 올라오지만 공원 등에서 이를 지키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현행 동물보호법 시행령 제13조 2항은 공원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피해를 막고자 ‘애완견 등 소유자 등은 등록대상동물(맹견 등)을 농림수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목줄 등 안전조치를 하여야 하며 배설물이 생겼을 때는 즉시 수거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1회 위반 시 5만 원, 재차 위반했을 경우에는 7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돼 있다.

관련 법과 과태료 부과 기준은 마련돼 있지만 일선 공원관리소 등에서는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단속하기가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윤석암 보라매공원 관리소장은 “주말에 공원을 찾는 시민이 1만 명이 넘고 공원 면적도 40만㎡에 달하지만 담당 행정 직원은 4명에 불과하다”고 하소연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4월 한 달간 서울시내 각 공원 등에서 애완견 관련 과태료 부과 건수는 단 한 건에 불과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각 구청별로 담당 공무원이 있지만 현장에 나가 동물만 감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단속 건수가 미미하다”고 말했다.

12개 한강시민공원을 관리하는 한강사업본부 역시 단속을 강화할 경우 현장에서 단속반원과 시민들 사이에 충돌이 자주 발생한다며 단속에 손을 놓고 있다.

임상수 한강사업본부 주무관은 “여의도와 강나루 등 사업본부에서 관리하는 공원만 12곳에 달하지만 각 공원 단속반원들이 과태료를 부과하기 쉽지 않다”며 “과태료를 부과할 경우 시민들의 불만과 항의가 많아 현장에서 계도하는 수준에서 처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한 달간 한강사업본부에서 구청으로 과태료 조치 의뢰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다.

특히 일부 공원에서는 개를 자주 데려오는 사람들끼리 ‘애견 피크닉’ 등의 장소를 만들어 개의 목줄을 풀어주고 쉬게 하는 사례도 있었다.

이곳에 가면 합법적으로 목줄을 풀고 쉬게 할 수 있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일부 개를 키우는 시민들끼리 임의적으로 만든 장소로 공원 관계자들은 “처음 듣는 말이고 공원 안에 그런 공간을 만든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서울대공원 관계자는 “일부 시민들이 공원 한곳에 모여 애완견의 목줄을 풀어주는 경우가 많아 이에 항의하는 민원도 자주 들어온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동물보호단체들은 공공장소에서 목줄을 사용하는 것이 개나 개 주인에게도 좋다는 입장이다. 박소연 동물사랑실천협회 대표는 “공원 내에서는 다른 동물도 많아 목줄을 사용하면 동물들 간에 다툼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잃어버리는 것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만큼 귀찮더라도 꼭 목줄을 사용해야 한다”며 “목줄을 하더라도 평소 애완견에게 사람을 물지 않는 훈련 등을 시켜 공원에서 다른 사람과 동물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목줄뿐 아니라 배변봉투 사용도 의무화됐지만 동물을 데리고 공원을 이용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를 지키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한강공원은 배변봉투 지참 및 배설물 수거를 알리는 현수막 10여 개가 걸려 있지만 공원 곳곳에는 치우지 않은 배설물이 쉽게 눈에 띄었다. 공원을 이용하는 애완견 주인들이 뒤처리가 번거롭다는 이유로 주변에 쓰레기를 버렸기 때문이다. 김왕근 한강공원 주무관은 “공원을 순찰하다 보면 곳곳에 배설물이 놓여 있어 항의하는 시민들이 많다”며 “현장에서 적발되더라도 ‘다음부터 잘할게요’라며 넘어가는 식”이라고 말했다.

배변봉투 등 처리 비용은 고스란히 세금으로 이어진다. 서울시 관계자는 “배변봉투 사용을 유도하기 위해 공원에 배변봉투를 배치하고 예산을 따로 배정해 홍보를 강화하고 있지만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보라매공원의 경우 지난해 배변봉투 비용으로만 1000만 원의 예산이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정철순 기자 csjeong1101@ 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