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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경/소설가

시내에서 일을 보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차 안은 조용했고 모처럼 빈자리가 드문드문 있었다. 대형 마트에서 1만 원에 파는 선캡을 5000원에 판다는 아주머니마저 다음 칸으로 넘어가고 나는 한가롭게 사람 구경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코를 박고 들여다보고 있는 스마트폰의 화면들이 훌쩍 커졌고 여인들의 신발이 샌들로 바뀌어 있었다.

어느 역에서 문이 열리자 오십 중반쯤의 아주머니와 젊고 건장한 청년 둘이 들어왔다. 아주머니는 내 맞은편에 앉았고 청년 둘은 마침 비어 있는 내 양 옆 자리에 하나씩 떨어져 앉았다. 연인 사이라면 자리를 옮겨주었을 텐데 나는 그냥 앉아 있었다. 둘이서 말을 주고받지도 않았는데, 한 정거장도 가지 않아 나는 둘 다 약간 지적으로 모자란다는 것을 느꼈다. 똑같은 스타일로 머리를 짧게 쳐올리고 바삭거리는 소리가 나는 같은 색깔의 얇은 점퍼를 입은 걸로 봐서 형제인 것 같았고 맞은 편에 앉은 이가 엄마였다.

셋의 얼굴은 비슷하게 닮았으나 엄마는 정상으로 보였다. 마음이 아팠다. 왜 하필 아들 둘이 모두. 그건 내 생각이었고 아주머니는 여태 헤엄쳐 온 삶의 바다에 몰아치던 파도에 단련돼 조약돌처럼 둥글어졌는지 쳐다만 봐도 예쁘다는 듯 넉넉한 미소를 짓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지적 장애인 특유의 천진하고도 순수한 표정으로 엄마를 쳐다보고 있던 두 청년 중, 내 왼편에 앉아 있던 청년이 울기 시작했다. 처음엔 코를 훌쩍이는 줄 알았다. 훌쩍훌쩍. 맞은 편 엄마가 나직한, 그러나 한낮의 조용한 지하철 안 전체에 퍼지는 목소리로 가만가만 달랬다. 왜 울어. 착하지. 울지 마, 응. 나는 내 무릎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지하철을 타기 전 무슨 일이 있었나 보다. 울지 말라니까.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따스했지만 청년의 훌쩍임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훌쩍이는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바로 옆에 앉은 내겐 그 슬픈 감정의 곡진함과 촉촉함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두어 정거장 뒤, 옆자리에 앉았던 사람이 내리자 아주머니가 손바닥으로 빈자리를 톡톡 쳤다. 훌쩍이던 청년이 그 자리로 가서 앉았다. 다리를 얌전하게 모은 청년이 이제 울기 시작했다. 소리내지 않으려 애쓰며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아주머니가 팔로 그의 등을 감싸며 물었다. 엄마 보고 싶었어? 그렇게 물어주길 기다렸다는 듯 그제야 느껍게 고개를 끄덕였다. 토닥토닥 어깨를 두드리는 엄마품에 기대 울던 청년은 그예 엄마 무릎에 얼굴을 묻고 제대로 허엉허엉 울음을 쏟아냈다. 청년은, 엄마가 보고 싶어서 울었던 것이다. 맞은 편에 앉아있는 엄마가 그리워서. 고요히 웃으며 아들의 등을 자꾸만 어루만지는 아주머니의 얼굴이 보살 같았다. 차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안보는 척, 안듣는 척하면서 그 풍경을 다 보고 들었다. 가슴이 뭉클하며 코끝이 매워진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어떤 시의 구절이 머릿속을 천천히 흘러갔다. 그대가 옆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시로 읽을 땐 몰랐던 경지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 엄마라고 처음부터 달관(達觀)의 경지에서 삶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녀가 겪었을 고통, 아픔, 분노, 상처들이 모여서 저 강렬한 풍경을 그려낸 것이겠다.

신경의학자 올리버 색스는 지적 장애인들의 정신적 특성 가운데 하나로 구체성을 들었다. 얼핏 보기엔 모자라 보이지만 그들의 정서는 어쩌면 정상인들보다 더 정감이 넘치고 상세하면서 생기 있고 낙천적이라는 것이다. 바로 내 곁, 내 앞에 있는 한 사람에게 우선 집중하는 그 구체성과 직접성을, 웹 속에서 온 세상을 헤매다니느라 바쁜 우리들은 이미 오래 전에 잃어버린 게 아닐까….

맞은 편에 나를 앉혀두고도 보고 싶어서 우는 존재가 내게는 있는가. 나 자신이 누군가가 보고 싶어서 허엉허엉 울어본 적이 언제였던가. 한강을 지나는데 강물은 오월의 햇살을 받아 한껏 반짝이고 현충원의 초록 숲이 환했다. 신록도 예쁘지만, 꽃보다 사람이 아름답다던 노래 구절이 떠오르는 한낮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