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8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사거리에서 한 운전자가 신호대기 중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을 시청하고 있다. 김동훈기자 dhk@munhwa.com

지난 3일 오전 6시쯤 택시를 이용해 출근하던 회사원 한모(30)씨는 아찔한 경험을 했다. 한씨를 태운 택시기사가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을 보며 주행하다 신호등 정지신호를 제 때 보지 못하고 앞차를 들이받을 뻔한 것이다. 다행히 급브레이크를 밟아 큰 사고는 면했지만 한씨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수밖에 없었다. 한씨는 “택시기사가 DMB에서 나오는 TV프로그램에 너무 몰입해 앞은 보지도 않고 계속 껄껄거리며 운전한 적도 있다”며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있었지만 너무 불안해 차에 타고 있던 20분 내내 좌석 옆 손잡이를 꽉 붙잡고 있었다”고 말했다.

자영업자인 김모(33)씨는 최근 자신의 영업용 차량 내비게이션을 주행 중 DMB가 나오지 않도록 변경했다. 얼마 전 평소처럼 DMB를 보며 운전하다 앞차를 들이받은 것이 원인이 됐다. 김씨는 “직업 특성상 차를 타는 시간이 많다보니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DMB를 켜둔 채 운전하는 것이 버릇이 됐다”며 “이번에는 다행히 서행 중이어서 큰 사고는 면할 수 있었지만 자칫하면 큰일이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1일 경북 의성군 단밀면 낙정리 25번 국도에서 상주시청 여자 사이클 선수 3명이 사망하고 4명이 중경상을 입은 교통사고 원인이 화물차 운전자의 DMB 시청으로 밝혀지면서 운전 중 DMB 시청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지난 2010년 도로교통사고 사망자 5505명 중 약 10%인 550여명이 DMB 시청을 비롯한 운전 부주의로 사망했다.

실제로 최근 발표된 각종 자동차 주행실험 결과는 운전 중 DMB 시청이 음주운전보다 위험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실험에 따르면 운전 중 DMB를 시청할 경우 앞을 보는 전방주시율이 50.3%로 혈중알코올농도 0.1%일 때의 전방주시율 72%보다 훨씬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소 관계자는 “실험 결과 운전 중 DMB를 시청하는 것은 면허정지 또는 취소 기준인 혈중알코올농도 0.05∼0.1% 수준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위험을 내포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미국 도로교통안전청(NHTSA) 역시 운전 중 DMB 시청이 음주운전보다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험 결과 DMB 시청 시 운전자의 반응시간이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으로 규정한 혈중알코올농도 허용치 0.05%보다 훨씬 높은 0.08% 수준으로 나타났으며 사고 발생 시 중상 가능성이 4배 이상 높아질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현재 국내에서 유통되는 차량용 내비게이션은 운전자가 개별 구입하는 제품의 경우 대부분 운행 중에도 DMB를 시청할 수 있고 차량 출고 시 내장된 DMB 역시 간단한 조작만으로 주행 중 DMB가 나오도록 개조할 수 있다. 차량용 내비게이션 판매업을 하고 있는 최모(29)씨는 “최근 나오는 내비게이션은 거의 100%가 DMB 기능을 탑재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차량에 내장된 일명 순정 내비게이션의 경우 일부 업소에서 2만~3만원가량의 비용만 지불하면 DMB가 나오도록 개조해준다”고 밝혔다.

현행 도로교통법 제49조에 따르면 운전자는 운전 중 휴대전화나 DMB를 시청할 수 없지만 벌점이나 범칙금 등 구체적인 처벌 규정이 없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따라 지난 7일 경찰청은 19대 국회가 개원하면 운전 중 DMB 시청을 처벌할 수 있도록 도로교통법 개정을 추진키로 했다. 하지만 미국이나 영국, 일본, 호주 등 대부분의 교통 선진국들이 이미 차량 주행 중 DMB 시청을 최소 10만원 이상 범칙금을 부과하는 등 강도 높게 규제해온 것과 비교할 때 한 발 늦었다는 지적이다.

교통안전을 위한 운전자의 의식과 습관 개선 역시 매우 시급한 과제다. 최근 국토해양부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운전자의 93%가 운전 중 DMB 시청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3분의 1이 넘는 운전자가 운전 중 졸음방지 등을 위해 자주 또는 가끔 DMB를 시청한다고 답했다. 특히 버스, 택시 등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수단의 경우 대형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운전자들의 교통안전 의식 변화가 시급하다.

정일영 교통안전공단 이사장은 “아무리 좋은 대책을 세워도 운전자 개개인의 안전운전 의식 없이는 무용지물”이라며 “특히 사업용자동차에 장착하는 DMB는 교통정보 안내만 가능하도록 추진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장병철기자 jjangbe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