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부산 강서구 송정동 항공기용 구조물 제작업체인 현항공산업㈜을 찾은 대한항공 항공우주사업본부 직원들이 현재 납품받고 있는 항공기 보조동력장치(APU)의 외부 문짝 조립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부산 = 김연수기자 nyskim@munhwa.com

지난 4월30일 오전 부산 강서구 송정동 항공기용 구조물 제작업체인 현항공산업㈜ 공장에서는 대한항공에 납품할 항공기 보조동력장치(APU)의 외부 문짝을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공장 한쪽에는 지난 3월 독일에서 20억원을 들여 사온 고속 기계가공 장비가 ‘윙∼’ 소리를 내며 금속 토막을 깎아 항공기 구조물을 만들고 있었다. 이날 대한항공 항공우주사업본부에서 나온 직원들이 공정 과정을 살펴보다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빙그레 웃었다.

총매출 200억원 규모의 회사가 매출액 10%가량을 투자해 고가 장비를 도입하기까지는 이 회사 허남균 대표의 ‘항공 산업은 장치산업’이란 소신과 함께 대한항공 측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됐다. 대한항공은 이미 6년 전부터 이 장비를 도입해 사용한 경험이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한 조언들이 현항공산업의 설비 투자 결정에 한몫한 것이다. 이 장비는 기존 장비보다 3배 더 빠르게 작업을 진행할 수 있어 생산성 향상에 큰 도움을 받고 있다.

허 대표는 “대한항공에서 교육은 물론, 기술 지원을 해줄 뿐 아니라 장비를 도입할 때도 어떤 장비가 좋을지 어떤 공정에 첨단 장비가 필요할지 등을 조언해 준다”면서 “대한항공과 우리 회사는 상하 관계의 원도급-하도급 관계가 아니라 협력회사”라고 말했다.

현항공산업 측이 ‘협력회사’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생산 물량 전체 공정을 모두 대기업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부 부품을 중소기업에 맡길 경우 단가가 낮아져 대한항공이 보잉이나 에어버스 등 해외 항공사로부터 각종 항공기 구조물 등의 물량을 확보할 때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결국 중소기업 협력사의 도움으로 대한항공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기 때문에 대한항공과 현항공산업 모두에 이익이 된다는 설명이다.

이길호 대한항공 항공우주사업본부 사업계획팀장은 “해외 항공사들도 대한항공 물품 단가에 현항공산업의 단가가 포함돼 있다고 하면, 경쟁업체보다 낮은 가격에 대해 바로 이해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반드시 전제돼야 하는 게 중소기업의 기술력이다. 기술력을 인정받기 위한 세계적 기준의 인증을 받는 것도 필수다.

대한항공은 기술 지원과 각종 노하우를 지원해 항공산업을 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항공 품질 경영 시스템 인증인 AS9100을 현항공산업이 받도록 도와줬다. 단순히 일감만 주는 게 아니라 자생력을 갖추도록 한 것이다. 이 같은 대한항공의 지원 덕분에 현항공산업은 보잉이나 에어버스 등 세계적인 항공회사에 납품도 가능하게 됐다.

현항공산업과 대한항공의 공생 협력은 비단 최근의 일은 아니다. 1988년 설립된 현항공산업은 1991년 대한항공의 협력사로 등재됐다. 하지만 현항공산업이 세계 시장에서 기술력을 알려 나갈 무렵인 1996년쯤 위기가 왔다. 해외 수출을 위해 생산 제품의 품질을 급하게 검사한 후 선적해야 하는데 장비가 없었던 것. 고가 검사 장비를 갖추지 못한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눈앞의 수출길을 놓칠지도 모를 난감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이때 허 대표는 무작정 대한항공을 찾아가 ‘한 번만 살려달라’며 도움을 요청했다. 대한항공이 보유한 첨단 검사 장비로 생산 제품을 검사해 달라는 것이었는데 흔쾌히 수락해 허 대표 자신도 깜짝 놀랐다고 한다. 현항공산업은 이 검사 결과를 토대로 해외 기업으로부터 기술을 인정받아 수출에도 성공했다.

현항공산업도 대한항공으로부터 전수 받은 ‘상생’ 노하우를 자사 협력업체에 전수했다. 부속품을 납품하는 한 기계 가공회사가 AS9100을 받도록 도움을 줬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공생발전 경험이 중소기업과 또 다른 중소기업으로 확대된 것이다.

허 대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상생 협력할 때 생산력과 영업 등 모든 면에서 효과가 배가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대한항공 항공우주사업본부는 현재 임가공 분과 20개사, 사내도급 분과 6개사, 연구개발 분과 30개사 등 모두 56개 협력회사를 보유하고 있다. 분과별 모임을 통해 대한항공이 지원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수시로 파악하고, 상생 협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부산 = 장석범기자 bu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