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20일 오후 2시 벚꽃축제가 한창인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윤중로(여의서로)는 주말 비 소식을 앞두고 꽃구경을 나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가족 단위의 나들이객들은 활짝 부풀대로 부풀어 오른 벚꽃나무 아래서 웃음꽃을 피웠고 데이트를 나온 연인들은 눈처럼 날리는 벚꽃 잎을 배경으로 포즈를 잡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봄날 나들이의 평화로운 모습도 잠깐, 햇빛을 받아 더욱 하얗게 반짝이며 빛나는 벚꽃나무 사이로 악취를 풍기며 쌓여있는 쓰레기 더미가 눈에 들어왔다.

시민들은 여의나루역에서부터 윤중로까지 줄지어 있는 100여 개가 넘는 노점상에서 파는 핫도그와 소시지, 번데기 등 먹거리를 사먹고 남은 음식물과 과자 봉지 등을 벚꽃나무 아래에 그냥 버려댔다. 나무 아래 한번 쓰레기가 쌓이기 시작하자 행인들은 무심결에 계속 그 위로 쓰레기를 던졌다. 벚꽃나무에 다닥다닥 붙인 ‘즉석 디지털 사진 1분 완성’ ‘20분 안에 자장면 배달’과 같은 광고 전단지도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여자친구와 나들이를 온 박성현(28)씨는 “벚꽃은 참 예쁜데 그 바로 아래 쓰레기 더미가 쌓여 있으니까 보기도 흉하다”면서 “쓰레기통이라도 설치해야 하는 거 아닌지”라고 말했다. 윤중로에서 핫도그 노점상을 운영하는 박모(여·52)씨는 “어차피 청소하는 사람들이 와서 다 가지고 간다”며 대수롭지 않아 했다.

쓰레기로 뒤덮인 것은 윤중로 옆 여의도 한강공원도 마찬가지였다. 공원 잔디 위에 돗자리를 펴고 앉은 100여명의 시민들은 미리 싸온 도시락을 나눠 먹으며 즐거워했지만 주변은 그들이 무심코 내다버린 음식 쓰레기와 담배꽁초 등으로 이미 지저분해졌다.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나온 최영민(42)씨는 “날씨도 좋고 꽃도 예쁜데 쓰레기가 많아 아쉽다”며 “사람들이 많이 오는 축제에서는 어쩔 수가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오후 7시 해거름이 되면서 수백여명의 벚꽃 나들이 인파가 더해지자 윤중로 일대는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했다. 나들이객들이 몰고 온 승용차로 여의도 한강공원 주차장은 이미 오전부터 만차가 됐다. 평소에는 200대도 차지 않는 공원 주차장은 갓길 등에 300대를 편법 주차해 1300대의 승용차로 가득차 있었다. 주차장으로 들어오려는 차량은 다른 차량이 빠져나가길 기약없이 기다렸고, 이로 인해 차량은 주차장 입구쪽에 정체돼 길게 이어져 있었다.

공원에서 주차 관리를 하는 김모(68)씨는 “축제기간에만 임시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고 있다”면서 “워낙 주차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아르바이트생에게 짜증내는 손님들이 많다”고 말했다.

윤중로 주변 인도와 차도 역시 차량들로 가득찼다. 여의나루역 1번 출구에 있는 서울아파트와 목화아파트 사이는 인도와 자전거도로에까지 20~30대의 주차된 승용차들이 늘어서 있었다. 아파트 단지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김형규(62)씨는 “봄꽃 축제 때만 되면 사람들이 이렇게 인도 위에 항상 차를 세운다”며 “걸어서 지나다니기가 불편한 건 물론이고 차도에다가도 주차를 해 주말에는 차를 갖고 나가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승용차를 몰고 가족과 벚꽃 구경을 나온 김현섭(35)씨는 “여의도에 들어와 주차를 하는 데까지 1시간이 걸렸다”며 “벚꽃 구경보다 집에 돌아갈 일이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한꺼번에 몰린 나들이 객들로 뒤덮인 마포대교와 서강대교 위에서 차량은 시속 5㎞도 채 내지 못했다. 수백명의 벚꽃 나들이 객들은 거북이 걸음을 하며 뒤엉켜 있는 차와 차 사이를 마구 지나다녔고 이에 승용차 운전자들은 시민들에게 경적을 울려댔다. 벚꽃을 만끽하러 나왔던 시민들은 승용차 경적 소리와 배달 오토바이의 엔진 소리로 가득찬 윤중로 모습에 인상을 찌뿌렸다.

여의나루역 앞에 있는 아파트에 사는 김순범(53)씨는 “축제 기간이면 소음 때문에 고생이 많다”며 “특히 밤에 자동차들 경적소리 때문에 잠을 잘 이루지 못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건너편의 꼬치구이 노점상을 가리키며 “저기 꼬치구이 굽는 냄새가 집 안으로까지 들어온다”며 하소연하기도 했다.

오후 9시쯤 여의나루역에서부터 마포대교까지 늘어서 있던 100여개의 노점 상인들은 “단속반이 떴다”면서 황급히 수레를 옮기기 시작했다. 상인들은 한시라도 빨리 구청 단속원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나들이 인파를 위협할 정도로 빠르게 수레를 몰며 “비켜”를 연신 외쳤다. 한편에서 “아줌마 조심하라” “지금 내 발 쳤다” 등의 고성도 오갔다. 벚꽃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있던 나들이객들은 노점 상인들과 시민들 사이에 벌어지는 고성으로 어리둥절해했다.

번데기와 오징어 등을 파는 노점상 윤모(여·52)씨는 “하루에 3~4번 정도 단속반이 뜨는데 걸리면 가스통을 빼앗기니까 골치아프다”면서 “쓰레기 내다버리는 거나 인도에 수레 대고 영업하는 것이 다 불법인 줄 알긴 하지만 축제가 한철이니까 놓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재동·김대종기자 trigger@munhwa.com

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2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국회 인근 윤중로에 벚꽃을 구경나온 시민들이 버린 쓰레기가 쌓여 있다. 김동훈기자 dh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