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없는 사회 / 필 주커먼 지음, 김승욱 옮김 / 마음산책

종교사회학자 피터 버거의 지적처럼 21세기는 세계 대부분의 지역이 “종교적 열정으로 들끓고 있는 시대”다. 그러나 이 책은 거꾸로 비종교적인, ‘신 없는 사회’를 주목하며, 종교적 성향이 덜한 사람들이 세속적인 삶을 지탱하게 하는 그 무엇에 다가선다.

저자는 종교적 메시지의 자동차 범퍼와 광고판이 등장하는 등 일상에서 신앙의 비중이 높은 미국 출신의 사회학자. 종교의 영향이 미미하고 주변적인 사회에서 삶의 본질이 어떤 모습인지를 살펴보기 위해 1년여 덴마크에 체류하며 덴마크와 스웨덴 사람들 대상의 심층인터뷰를 실시했다.

“죽은 뒤의 삶이 있는지,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그저 삶이 끝나면 모든 게 끝난다고 생각해요.” “살면서 불만스럽고 화가 날 때도 있지만 그건 다 자기 잘못인 것 같아요. 하지만 날 지탱해줄 뭔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어요.” “아버님은 네가 남한테 당하고 싶지않은 일을 절대 남한테 하지말라고 하셨어요. 이걸 지키는 것만도 훌륭한 일이죠.”

두나라 사람들은 교회에도 잘 안나가고 대체로 세속주의적 분위기에서 살고 있다. 종교적으론 무심하게, 죽음은 단순히 자연현상으로 차분히 받아들이며 삶의 궁극적인 의미란 그저 개인이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 예수, 악마, 천국, 지옥을 믿지 않고 다만 “하늘과 땅사이엔 뭔가 있다”고 대수롭지않게 말한다. 하느님을 믿지는 않지만 오래된 교회에서 결혼식을 치르며 순전히 전통과 낭만적인 분위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교회 결혼식과 세례의식도 종교적 색채가 가미된 세속적인 전통에 불과할 뿐이다.

저자는 조사 과정에서 북유럽사회가 종교성 없이도 도덕적·윤리적·경제적으로 문제없이, 오히려 종교성이 충만한 미국사회보다 더 풍요롭게 살고 있음을 목도한다. 과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것만 믿는 ‘합리적 회의주의자’, 이상향을 따로 설정하지 않고 현실에 충실한 ‘이상적 세속주의자’ 또는 함께 잘 사는 사회를 만들려고 애쓰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개인주의자’이든, 종교와 거리를 두었다. 조사대상중 다수를 차지하는 덴마크 사람들은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후예답게 현재의 삶, 실존 그 자체에 충실하면서 오히려 도덕적이고 평화로운 사회를 이끌었다.

덴마크 사람들은 종교적 열정으로 부글거리는 사회보다 훨씬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음은 각종 조사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이달초 발표된 갤럽의 행복도 조사에서 세계 156개국 중 행복도 1위의 나라가 덴마크였고, 다른 북유럽 국가들도 상위에 올랐다.

저자는 “도덕적이고 평화로운 사회에 종교가 필수 조건은 아니다”고 지적한다. 종교성이 약해도 우려하는 것처럼 위험한 사회가 도래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세속주의가 도덕적이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어 준다는 점을 비종교적인 사람들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

종교적 믿음이 사라져도 훌륭하게 제 기능을 발휘하는 사회가 가능하고, 하느님이 일상생활의 핵심요소로 존재하지 않아도 살만한 세상을 영위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맹목적인 표층 종교를 비판해온 종교학자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는 “이 책이 종교의 본래 의미를 되물으며 한국 현대사회의 한 단면을 조명해준다”고 평했다.

신세미기자 ssem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