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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선 초역세권 아파트형 공장’, ‘여성과 대화, 전화해 주세요. 010-5280-XXXX’,

‘신용불량자 한도 500만원 카드 발급 가능’, ‘친구 채팅 1588-XXXX’.

지난 17일 오후 3시 경기 고양시 덕양구 행주외동 부근. 행주대교를 빠져나와 잠실 방향 올림픽대로 주변 교각과 전봇대에 흉물스럽게 걸려 있는 불법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차량 운전자들의 눈에 잘 띄게 하기 위해 노란색 바탕에 검정글씨로 쓰인 요란한 광고물들은 가로 4m, 세로 1m의 대형 현수막부터 가로 세로 50㎝ 크기의 소형 부착물까지 크기가 다양했다. 너저분한 도로 주변은 그렇다고 해도 시선이 분산되면서 운전에 방해가 됐다. 일부 현수막은 바람에 휘날리거나 찢겨 전봇대에 지저분하게 걸려 있었다.

올림픽대로를 빠져나와 일반도로에 진입하자 불법 현수막은 더욱 늘어났다. 서울 양천구 목동 안양천 길에는 50m 남짓한 도로에 5개의 불법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이날 올림픽대로와 안양천 길 등에서 1시간여 동안 확인한 불법 현수막은 총 60여개에 달했다. ‘떼인 돈 받아줍니다’, ‘신용불량자 카드 발급’ 등 음성적인 내용도 있었다. 최근에는 건설 경기가 침체된 상황을 반영하듯 ‘9호선 초역세권 아파트 공장’, ‘강서 IT밸리 아파트형 공장’ 등 분양 관련 현수막들도 크게 늘었다.

도로 주변 불법 현수막 광고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떼어도, 떼어도 계속 생겨나는 현수막에 단속 주무기관인 서울시청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는 무려 29만2575개의 불법 현수막을 적발해 시정조치를 했다. 불법 현수막 철거건수가 하루에 800여개에 달한다. 하지만 단속 효과는 미미하다. 올해 들어 두 달간 불법 현수막 단속 건수는 이미 5100건을 넘어서 지난해와 다르지 않은 실정이다.

올림픽대로 등 자동차 전용도로 주변 시설물을 관리하는 서울시설관리공단 관계자는 “4명이 한 개 조를 구성해 한강 교량 위에 있는 불법 현수막을 제거하는데 그 수가 매일 100개 정도는 된다”고 말했다.

불법 현수막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일단 도로 주변에 설치하는 광고물의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올림픽대로 등 자동차 전용도로의 일일 교통량은 200만대가 넘는다. 불법 현수막을 걸다가 적발되면 옥외광고물 관리법 제20조에 의거, 최대 500만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하지만 업체들은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업체들은 ‘재수 없게’ 걸려서 내야 하는 500만원 과태료보다 광고를 통해 오는 수익이 더 많다고 보고 있다. 더욱이 불법 광고물에 적힌 업체나 개인 휴대전화 번호는 대부분 ‘대포폰’이다. 명의자가 불분명하니 과태료를 부과할 대상을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최근 몇 년 사이 불법 현수막 광고를 원하는 업체에서 수주를 받아 현수막을 대신 걸어주는 전문 대행업체도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이들 업체는 단속이 소홀한 주말을 노려 오토바이를 타고 도로를 다니면서 집중적으로 광고물을 걸고 붙인다. 5m가 넘는 높은 전봇대 상단에 현수막을 거는 데 1분도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 단속기관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들 전문 대행업체는 평일 단속이 시작될 시점이면 걸었던 불법 현수막을 떼어 갔다가 다음 주말에 다시 붙이기도 한다. 서울시 도시디자인과 관계자는 “평일에는 단속팀이 실시간으로 수거를 해 가니 일부러 단속을 피하기 위해 야간이나 주말에 붙인다”며 “금요일 오후에 붙인 후 월요일 아침에 떼기도 한다”고 말했다.

도로 주변에는 계속적으로 불법 광고물이 넘쳐 나면서 운전자와 도로 인근 주민들은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운전자 김준연(45)씨는 “운전을 할 때 광고물이 눈에 띄면 나도 모르게 보게 돼 방해가 될 때가 많다”며 “단속을 강화하거나 벌금을 더 많이 물려 불법 현수막을 사라지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양천길 인근에 사는 주부 조모(38)씨는 “아이가 길을 가다가 불법 현수막을 보고 ‘여성과 대화’라며 전화번호까지 따라 읽는데 혹시라도 전화를 할까 걱정이 됐다”고 하소연했다.

서울시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 서울시설관리공단 등이 단속요원을 투입해 현수막을 철거하고 있지만 인원과 예산 부족으로 늘어나는 불법 현수막을 감당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서울시설관리공단도 예산 문제로 인해 올해 불법 광고물 철거 관련 예산을 지난해보다 20% 정도 삭감했다.

유민환·인지현기자 yoogiza@munhwa.com

이미지 크게보기 17일 서울 강서구 방화동 방화사거리 부근 인도 주변에 불법 현수막들이 어지럽게 내걸려 있다. 김동훈기자 dh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