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충남 논산시 취암동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인도 전통복장으로 차려입은 결혼이주 여성들이 인도춤을 연습하고 있다. 논산 = 신창섭기자 bluesky@munhwa.com

“삘릴리 빰빰~, 삘릴리 빰빰….”

13일 오전 충남 논산시 취암동 논산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센터장 구옥란)에서는 흥겨운 인도 음악이 피리소리를 타고 흘러나오는 가운데 외국인 여성들의 ‘춤판’이 한창이었다. 벨리댄스 의상과 비슷한 화려한 원색의 인도 전통 민속춤 의상으로 곱게 단장한 여성들이 연습 중인 율동은 일명 ‘인도춤’(인도명 아자나칠레). 7명의 여성은 신명 나는 표정으로 섬세한 손동작을 비롯, 춤사위 하나하나에 세심한 신경을 쓰며 스텝을 밟고 호흡을 맞춰 나가고 있었다.

이들은 논산에 거주 중인 결혼이주 여성들로 논산 다문화센터에 개설된 어울림 동아리 프로그램 중 하나인 ‘인도춤’반 단원들이다. 6개국 출신의 다국적 팀으로 2년 전부터 기량을 닦아 지난해 전국 다문화가족지원 네트워크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빼어난 실력을 자랑하고 있다.

몽골 출신으로 이 동아리의 리더인 게렐마(29)씨는 “회원들의 출신국은 서로 다르지만 남편들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타국 생활에서 겪는 스트레스와 외로움, 문화적 소외감을 풀 수 있고, 여러 경진대회에서 잇따라 상까지 받게 돼 너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현재 논산시에는 675가구의 다문화 가정이 있다. 충남 16개 시·군 중 4번째로 많은 규모다. 논산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지난해 어울림 사업 성과 평가에서 A등급, 종합 평가에서 가등급 평가를 받을 정도로 모범적인 운영 성과를 자랑한다. 중국 출신 여성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여느 시·군과 달리 논산에는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 여성이 200가구로 가장 많다. 다음이 중국(172가구), 필리핀(116가구), 캄보디아(52가구) 등의 순이다.

논산 다문화센터의 프로그램 중 독창성이 돋보이는 것은 결혼이주 여성들이 겪는 ‘미각 향수병’을 달래주기 위해 2010년부터 시작한 ‘무지개 농장’ 사업. 여성들이 자국에서 먹던 작물을 직접 재배해 식자재로 활용하는 사업이다. 수년 전 우즈베키스탄 출신 결혼이주 여성이 심한 입덧을 견디다 못해 친정으로 귀국하던 도중 기내에서 태아를 사산한 안타까운 사연을 듣게 된 구옥란(54) 센터장이 아이디어를 내고 직접 농지를 빌려 추진한 사업이다.

구 센터장은 “임신 중인 다문화 가정 여성들이 심한 입덧을 다스리려 해도 입맛에 맞는 음식이 없어 고통을 겪는 것을 보고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결혼이주 여성들과 함께 베트남의 야채류인 ‘라오멍’, ‘무윽당’, 필리핀의 ‘오크라’, ‘깍지 강낭콩’, 캄보디아의 ‘암파라야’ ‘오크라’ 등 다문화 여성들이 원하는 채소류의 종자를 구해 임대 농장 1000여평에 심어 길렀다. 이웃 농민들이 재배 중인 외국 작물을 잡초로 잘못 알고 몽땅 뽑아버리는 등 웃지 못할 해프닝도 겪었지만 열심히 농사를 지은 덕분에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었다. 신선한 모국의 먹거리를 직접 재배해 먹는 기쁨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캄보디아 출신 나른 찬나(한국명 이지영·29)씨는 “얼마 전 같은 캄보디아 출신 임신부 친구와 ‘암파라야’로 볶음 요리를 했다”며 “입덧 때문에 아무것도 먹지 못하던 친구가 그 요리를 맛있게 먹고 너무 행복해했다”고 말했다.

무지개 농장 사업은 지난해 1400평 규모로 확대됐다. 외국 작물은 물론 고구마, 땅콩, 배추 ,무까지 심어 논산지역 사회복지시설에 선물했다. 구 센터장은 “결혼이주 여성들이 도움만 받는 존재가 아니라 직접 기른 농작물을 통해 남을 도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이 이 사업의 또 다른 효과”라고 설명했다.

알찬 취업 알선 성과도 논산 다문화센터의 자랑거리다. 취업을 워낙 많이 시켜 센터 이용자가 급감할 정도다. 이날도 논산 성동산업단지 입주기업인 삼광유리 인사담당자가 이곳 여성 20명을 근로자로 채용하기 위한 상담을 벌이고 있었다. 센터와 지역 기업 간의 적극적인 ‘네트워킹’을 통해 2010년 이후 매년 100여명씩의 취업 실적으로 올리고 있다. 삼광유리 관계자는 “젊은 다문화 가정 여성들은 성실한데다 손기술 습득이 빨라 생산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센터는 지난해 한국 국적을 취득한 여성 30명에게 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 교육을 시켜 자격증을 따게 했다.

구 센터장은 지난 2000년 논산에서 처음 외국인 근로자 한국어학당을 운영한 이래 13년째 다문화 여성들의 뒷바라지를 해와 지역에서는 ‘다문화 가정의 대모(代母)’로 통하는 인물. 구 센터장은 “낯선 이국땅에 시집와서 부적응으로 힘들어하는 여성들이 자립과 자활을 통해 어엿한 한국인으로 잘 살아가도록 ‘친정 엄마’ 같은 역할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논산 = 김창희기자 ch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