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튼과 롬멜 현대 기동전의 두 영웅 / 데니스 쇼월터 지음, 황규만 옮김 /일조각

전쟁사(史)는 역사의 백미다. 당대의 사회 구조와 역학 관계는 물론 시대적 무대 위에 등장하는 주역들의 인간적 속성까지 낱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전쟁은 한 인간의 밑바닥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시·공간적 배경을 제공한다. 동양의 대표적 병법서인 ‘손자병법’은 이렇게 시작한다. “전쟁이란 나라의 중대한 일이다. 죽음과 삶의 문제이며 존립과 패망의 길이니 신중히 살펴야 한다.”

이 책은 그 같은 전쟁사의 흥미진진함을 여실히 보여 준다. 2차 세계대전의 두 주역이었던 조지 패튼(1885∼1945)과 에르빈 롬멜(1891∼1944)을 내세워 전쟁의 이면을 들춰내고 있다. 그들의 파란만장했던 인생 역정과 긴밀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2차 세계대전의 진면목을 책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패튼과 롬멜을 단순히 전쟁 영웅으로 치켜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인간적인 약점까지 낱낱이 까발리면서 두 인물에 대해 공정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패튼과 롬멜을 다룬 책은 많았지만 두 사람을 비교하며 함께 다룬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우선 패튼과 롬멜은 아이러니하게도 상대 진영에서 오히려 더 인정을 받는다. 북아프리카 전투가 한창일 때 윈스턴 처칠은 영국 하원 연설에서 롬멜에게 찬사를 보냈다. 영국군에게 ‘사막의 여우’는 경외의 대상이었다. ‘롬멜답다’라는 말은 어떤 일을 완벽하고 멋지게 처리했다는 뜻으로 쓰일 정도였다. 미국의 사관생도들에게도 롬멜은 가장 이상적인 지휘관으로 여겨졌다. 롬멜은 또한 ‘선량한’ 독일인, 즉 나치즘에 물들지 않은 채 깨끗하고 명예로운 전쟁을 수행한 인물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1944년 롬멜의 강요당한 자살은 그에게 히틀러를 타도하고자 한 독일 내 저항 세력이자 히틀러의 희생양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줬다. 이에 비해 독일 군사 전문가들은 롬멜을 특별히 유능한 장군으로 여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롬멜이 오히려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치밀한 계획보다는 즉흥적인 것을 선호했으며, 군수 보급은 운에 맡기려 했다고 비판한다.

한편 독일 직업군인들은 패튼이야말로 현대적 전쟁을 이해하고 있으며, 자신이 필요한 무기 체계를 활용할 줄 아는 장군이라고 평한다. 패튼은 창의적이고 공격적인 전술을 이해했고, 최소한의 손실로 적을 굴복시키는 전차전의 명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인은 패튼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저속하고 허풍쟁이인 데다, 병사를 구타하고, 여차하면 자제력을 잃고 상관에게 대들어 구설수에 오르며, 언론의 뭇매를 맞는 ‘말썽꾸러기 장군’일 뿐이다. 미국인에게 패튼이 보여 줬던 호전적인 성격은 당혹스럽게 다가온다. 패튼은 존경할 만한 인물이기는 하지만 본받고 싶은 인물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 책은 용맹과 허세, 명예와 이기심, 그리고 믿음과 배신이 펼쳐지는 한 편의 드라마다. 패튼과 롬멜, 두 인물의 복잡한 인간성을 그들이 몸담았던 군사 조직과 그 군사 조직을 거느린 국가의 연장선에서 살펴보고 있다. 아울러 두 장군을 통해 미군과 독일군의 특성 및 그들의 전쟁 수행 방식을 비교하고 있다. 저자는 “패튼과 롬멜은 스스로 참된 군인의 모습을 만들어 낸 인물들”이라며 “동시에 그들은 자신이 상대한 적이 만든 존재이기도 하다”고 평했다.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