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정의로운가 / 이정전 지음 / 김영사

이 책은 ‘자본주의 시장은 과연 공정하고 정의로운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세계가 함께 새로운 자본주의의 모델을 찾고 있는 지금, 이 질문은 그 해법에 대한 근본적 방향의 차이를 제시한다. 만일 시장이 기본적으로 공정하고 정의롭다면 새로운 자본주의의 핵심과제는 시장의 뒤탈을 깔끔하게 설거지하는 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공정치 못하다면 새로운 자본주의의 핵심 과제는 시장에 대한 대수술에 방점이 찍힐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과학자’인 경제학자들에게 형이상학적인 ‘정의’는 주요 주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마이크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정의 논쟁 이후 정의는 경제학자들의 주요 이슈 가운데 하나로 떠올랐다. 이 책은 샌델 교수의 포괄적 정의에 대한 원로 한국 경제학자의 구체적 각론이다.

저자는 현재의 시장경제가 정의롭지 않다고 단정적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 독자 스스로 생각하게 한다. 수의사 출신인 총리내정자의 가상 청문회를 통해 강자와 약자의 목소리의 차이, 갑자기 많아진 바나나를 두고 벌어지는 침팬지의 이전투구를 통해 풍요로운 시장의 역설, 고문경찰과 뇌물수수 공무원의 손해배상에 따른 상호이익의 불공정성 등에 대해 반성을 촉구한다.

협동에 따른 공평한 분배의 장점과 단점, 인센티브 성과주의의 효율과 비인간성을 말하면서 공평한 소득분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제비뽑기나 사다리타기를 예로 들며 과정의 공정성과 결과의 불공정을 대비, 공정한 정의에 대해 설명한다. 개미와 베짱이 우화의 다각적 분석을 통해 일과 노동의 문제, 고학력 청년실업, 더 나아가 노동시장에서의 선택의 자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그는 수많은 질문을 통해 현재 시장을 지배하는 세 개의 원칙, 즉 거래를 통한 상호이익의 증진과 경쟁의 원리, 경제적 인센티브의 원리가 물질적 풍요와 풍부한 선택의 자유를 주었지만 공정성에 근본적 문제가 있다고 결론을 지었다.

저자는 빵 때문에 도둑질을 한 가난한 노인에게 벌금형을 부과하며, 그것을 방치한 판사 자신을 비롯해 재판정의 모든 시민들에게도 벌금을 부과해 노인에게 줌으로써 문제를 해결한 미국 라가디아 판사의 명판결을 예로 들며 실업과 빈부격차 문제의 공동체적 해결방법의 단서를 제시했다. 그는 또 저울과 칼로 상징되는 이분법적 정의에 대한 환상과 함께 현재 자본주의 체제에서 정의를 구현할 수 있다는 믿음의 포기를 요구했다.

신뢰와 도덕, 정의와 상생이 꽃피는 시장을 위해 모든 대화자가 서로 경청하며 답변하고, 서로 속일 의사가 없이 상대방을 성실한 주체로 인정하는 하버마스의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통해 현재 자본주의 시장에 만연한 도구적 합리성의 횡포를 넘어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승현 선임기자 hye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