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23일 현대자동차의 전직 사내(社內)하도급 근로자가 낸 부당해고 구제 소송에서 원고 승소한 원심을 확정하면서 적잖은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확정판결의 요점은 제조업 현장에서 관행으로 통용되는 사내하도급을 파견근로로 판단하고 원청업체에 책임을 물은 것이다. 현대차에서만 전체 근로자의 23.8%인 8196명이 사내하도급 형태로 근무중이다. 국내 300인 이상 사업체 중 사내하도급 근로자는 32만명이 넘는다. 노동계는 이들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사내하도급은 한국 특유의 고용경직성(硬直性)이 만든 시스템이다. 국내 고용법제에서는 제조업에 관한 한 파견근로가 불법이다. 정규직으로만 뽑으면 비용도 비용이지만, 불황기에는 정리해고 등으로 대처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생산인력을 유지하면서 경기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사내하도급 형태가 자리잡은 것이다. 미국·일본·독일 등 거의 모든 선진국에는 제조업에 대한 파견 제한 자체가 없고, 당연히 사내하도급을 법으로 규제할 이유도 없다. 해외 자동차 업체들은 금융위기 이후엔 오히려 탄력 고용을 더 확대하는 추세다.

확정판결은 컨베이어벨트를 중심으로 일하던 소송 당사자 1인에 국한된 것으로, 다양한 업무형태를 지닌 모든 사내하도급 근로자에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를 둘러싼 연쇄소송 등으로 현장의 혼란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들을 노동계 요구대로 모두 정규직화한다면 한국경제연구원 추산으로 5조4000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이 금액이면 11만6000명을 신규 고용할 수 있어 일자리 창출과도 거꾸로 가는 것이다.

그러잖아도 정치권의 비정규직 처우 개선 요구, 정부의 연장근로 축소 지침 등으로 비상이 걸린 기업으로선 사면초가에 몰린 형국이다.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법인세 대폭 감세 등으로 제조업을 전폭 지원하는 것과는 판이한 양상이다. 기업이 이렇게 손발이 묶이면 해외로 눈을 돌릴 것이고, 이는 고용 여지를 더 줄이게 된다. 사내하도급의 근본적인 해법은 그렇게 만든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대법원 판결을 글로벌 흐름에 맞게 고용경직성 해소를 법제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