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90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기금을 지원해온 칼 거쉬먼(69) 전미민주주의기금(NED) 회장이 북한의 민주화 및 인권지원에 힘써온 공로로 정부로부터 수교훈장 흥인장을 받고 최근 한국을 방문했다.

북한인권시민연합(이사장 윤현)이 주관한 흥인장 수상 축하 리셉션 다음날인 지난 17일 저녁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그를 만났을 때 그는 “북한 인권문제가 여전히 여야 정쟁거리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 아쉽다”면서 얘기를 시작했다.

―NED가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는데 한국에서는 여전히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입장차가 큰 상황이다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쟁취된 지 20년이 지났는데 북한의 인권문제를 둘러싸고 보수와 진보, 여야정치인들이 대립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우리가 북한 체제에 대해선 서로 다른 접근을 하더라도 북한 인권문제는 그 자체가 공통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

―북한인권법 입법화가 이번 국회에서 어려울 것 같은데.

“이번 국회에서 북한인권법이 통과되지 못할 것 같아 심히 유감이다. 여야 정치인들이 법을 갖고 싸우기 전에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생각으로 돌아가 공통의 기반을 만들었으면 한다. 인권문제를 어떻게 접근할 것이냐에 대해 협의를 하고 나서 입법에 나서야 할 것이다. 민주통합당 등 야당세력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사람들이고 나는 그들의 희생을 존경하고 존중한다. 한국의 민주주의자들은 북한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특별한 의무감이 있다고 본다.”

―대북포용정책 지지자들은 북한인권보다 북한주민의 경제적 생존권이 중요하다며 대북지원이 우선되야 한다는 입장인데.

“북한의 재난은 한국이 북한에 지원을 하지 않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 체제가 전체주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북한의 살 길은 개방해서 경제체제 등을 전반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일 뿐이다. 북한에 경제적 지원을 하고 식량을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북한사람들의 삶을 방기하면 안 된다.”

―과거 진보정권에선 북한 인권문제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경향이 있는데.

“포용정책은 많은 성과를 내지 못한 만큼 이제 다른 접근법을 모색해야 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소속정당과 정치적 입장이 다르지만 대북정책에 대해선 공통기반을 갖고 있다. 한국에서도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던 간에 대북문제에 대해선 공통의 기반을 가졌으면 한다. 그것은 민주주의와 인권이 대북정책의 기본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도 북한 인권문제를 무시하면 안 된다는 게 한국에서 컨센서스가 됐으면 한다.”

―그런 얘기를 김대중 정부 때 인사들과 한 적이 있는가.

“물론이다. 그들은 정권을 다시 잡더라도 김대중 정부 때와 같은 햇볕정책을 쓰지는 못할 것이라고 내게 분명히 얘기했다. 당시 포용정책은 유화정책에 머무른 감이 분명히 있다. 포용정책 지지자들이 강력하게 북한인권을 옹호하지 않았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인권을 위해 적극적으로 싸우는게 북한의 변화를 이끄는 길이다.”

―북한의 상황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우리가 대북인권단체 지원활동을 시작한 1990년대 중반엔 탈북자가 별로 없었고 대북인권단체도 많지 않았다. 북한의 변화는 1990년대 중반 식량난 이후 북중 무역이 활성화하면서 본격화했는데 요즘 북한에서는 장마당이 50개 이상이고 하루 이용인구가 1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장마당이 생겼다는 것은 북한의 기존체제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전체주의는 영구적인 체제가 될 수 없다. 중국의 경우 경제현대화를 통해 많은 변화를 하고 있는데 인터넷 사용자가 6억명, 휴대전화 사용자가 5억명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독재를 유지하기는 어렵다. 중국도 생존하기 위해선 민주주의적인 전환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10∼15년 정도면 변화가 이뤄질 것으로 본다. 그 경우 북한의 변화도 불가피하다.”

―NED의 지난 사반세기 역할에 대해 평가한다면.

“우리는 1994년 창립 이후 90개국의 민주주의 관련 단체를 지원해왔는데 많은 아시아와 동유럽 지역에서 많은 성과를 이뤄냈다. 한국에서는 북한인권시민연합 등 14개 단체에 145만달러(약 16억원)를 지원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의 지원을 받아온 폴란드에서 폴리시 솔리대리티 네트가 창설돼 폴란드의 민주화 경험을 외국에 지원해주고 있고 대만도 그런 기금을 만들어 지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한국도 민주주의 전환을 꿈꾸는 전세계 국가들을 위해 그런 기금을 만들어 한국의 경험을 전수해줬으면 한다.”

글 = 이미숙기자 musel@munhwa.com
사진 = 심만수기자 panfocus@munhwa.com

◆ 칼 거쉬먼 = 1943년 뉴욕에서 태어나 예일대에 진학, 재학 당시부터 흑인민권운동에 뛰어들었다. 하버드대 대학원 졸업 후 민주주의 운동에 관여하기 시작했고 1993년 전미민주주의기금(NED)이 설립되자 1994년 회장으로 부임, 28년째 이끌고 있다. NED는 미 의회로부터 연간 313만달러를 지원받아 전세계 각국의 민주주의 관련단체에 기금을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