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김정일 장례식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이명박 정권이 급기야 “천안함·연평도 도발의 최종적 책임은 김정일에게 있다”는 해괴한 논리를 만들어 사자(死者)에게 전적으로 책임을 돌리고, 더 이상 북한의 새 지도부를 향해 시인·사과·재발방지 약속을 추궁하지 않겠다고 돌아서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청와대와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22일 이곳저곳에서 “김정은이 얼마나 책임을 져야 할지 확실한 정보가 없어 판단하기 어렵다”며 ‘김정은 = 책임없음’이란 얼토당토않은 궤변을 언론에 흘렸다. 그렇다면 김일성의 6·25 남침 책임도 김일성이 죽어 사라졌으니 김정일이고 김정은이고 책임질 일이 아니란 말인가.

이 대통령도 22일 여야대표 회담에서 “(김정일 사후) 우리가 취한 조치들은 북한을 적대시(敵對視)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북한에 보이기 위한 것”이라고 ‘적대시’라는 표현을 주저하지 않았다. 국정 최고책임자이자 최고 군통수권자는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데 절대 신중해야 한다. 마치 주적(主敵) 표기를 철회했던 좌파정권들의 햇볕정책으로 회귀한 분위기인 것 같다. 김정일이 천안함과 연평도를 때린 건 김정은의 권력세습을 위한 북한 내부 결속용이었다는 게 국내외의 보편적 분석 아닌가. 연평도 도발 후 북한 내부에서도 ‘김정은 대장은 포병술의 천재’라고 칭송하며 김정은의 대담성을 홍보해왔다. 김정일 사망 사실도 깜깜히 몰랐던 이 정권이 김정일 부자 간 책임의 한계를 얼마나 알고 있다고 모든 책임을 죽은 김정일에게 전가하려 애태우는가.

이명박 정권은 또 “앞으로 대북관계는 북한이 비핵화(非核化)에 대해 진정성을 보일 때 달라질 것”이라는 궤변을 내놓았다. 김정은 체제라 해도 핵 포기를 하겠다고 나설 가능성이 단 1%도 예상되지 않은 상황임을 모를 리 없건만, 결국 천안함·연평도 도발 책임에 면죄부(免罪符)를 미리 알아서 던져주겠다는 말이다. 노동신문은 22일 1면 전면(全面) 사설을 통해 “우리는 김정은 동지의 선군(先軍) 영도를 높이 받들고 나라의 자위적 국방력을 백방으로 강화하겠다”고 말해 김정일이 살았을 때 폈던 핵무기 개발·대남 군사도발·강성대국 건설을 ‘유훈(遺訓)통치’로 밀고 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런 김정은 체제를 향해 이명박 정권은 대북 경제지원도 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하고 있다. 김정은 체제가 들으면 고소하기 그지없는 소리만 골라서 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대북 원칙을 포기하고 나이브한 생각에만 빠져 있다가 또 무슨 일을 당할지 걱정이 크다. 28세의 김정은이 뭐가 대단해서 이명박 정권이 서두르고 있는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