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미얀마와 관련한 중국 외교부의 한 가지 소식이 중국 베이징(北京) 외교가의 관심거리가 됐다. 미얀마 주재 중국 대사가 민주화 운동의 아이콘 아웅산 수치 여사를 만나 현안에 대한 여러 의견을 나눴다는 것이었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소식은 미얀마에 있어서는 정국의 변화를 암시하는 가장 강렬한 신호 중 하나였다.

중국이 현 미얀마 군부 정권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 중 하나여서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는 수치 여사와는 그 동안 거리를 둬 왔다. 중국 대사의 면담 시점도 묘하다. 바로 11월30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국빈 자격으로 미얀마를 방문, 수치 여사를 만났다. 미국 장관급 인사의 50년 만의 방문이었다.

주요 2개국(G2)으로 불리는 미국과 중국이 아시아의 패권을 놓고 벌이는 줄다리기가 1차적으로 미얀마에서 촉발됐다. 현재 미얀마에는 다이빙궈(戴秉國)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메콩강 유역국 정상회의 참석차 방문 중이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도 미얀마를 찾을 예정이다. 최근 중국과 남중국해 분쟁으로 급속히 친미 경향을 보이고 있는 필리핀에는 20일 중국의 차기 대권후보인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이 방문했다. 시진핑은 24일까지 일정으로 필리핀에 이어 태국 방문도 예정하고 있다.

과연 차기 중국을 이끌 시진핑이 어떤 외교 수단으로 필리핀의 마음을 돌릴지 미국을 비롯한 세계가 그 결과를 주목하고 했다. 이 민감한 방문에 대해 최근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시진핑의 첫 번째 시험무대”라고까지 평했을 정도다. 무엇보다 이들 국가는 바로 클린턴 국무장관이 11월 미얀마 방문까지 잇따라 방문했던 국가들이다.

여기에 시진핑은 내년 2월 미국 방문이 예정돼 있어 아시아의 승부 결과를 놓고 적진(?)에서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한다. 중국 지도부가 이렇게 바빠진 것은 최근 아시아 각국에 대해 ‘아시아 관여’를 외친 미국의 다자간 외교가 강화됐기 때문이다. 사실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그룹 내 활동 등 다자간 외교는 그 동안 경제협력을 무기로 한 중국이 강세를 보였던 분야다. 그동안 환태평양 지역의 전통적인 강국인 미국은 한국, 일본, 대만 등 우방국들과 쌍방 우호 관계를 돈독히 하는 미국 중심의 쌍방향 외교를 펼쳐왔을 뿐이다.

미국의 태도가 분명히 바뀐 것은 지난 11월19일 폐막한 동아시아 정상회의(EAS)와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다. 미국은 이 자리에서 중국 견제 외교를 분명히 했다. 중국이 남중국해와 국경문제로 인도, 필리핀, 베트남 등과 갈등을 빚는 틈을 비집고 들어가 중국이 전통적으로 강했던 다자간 외교무대에서 기선을 잡았다. 특히 미국은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들을 규합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2012년까지 마무리하기로 합의했다. 일본까지 동참을 선언한 상황이다. 미국이 재정적자와 유럽발 금융위기 등으로 어려움에 처한 상황에서 탈출구를 아시아에서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 베이징에서 잇따라 개최된 2012년 외교 정책관련 포럼들에서 중국의 전문가들은 미국 등 국가들과의 평화 공존을 그 어느 때보다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G2’ 양국 간 대립은 2012년에도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베이징 = 박선호특파원 shp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