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중/논설실장

이명박·한나라당 정권이 암초에 부딪칠 때마다 보수·우파 여론으로부터 전면적 등판(登板) 요구를 받아온 박근혜. 그는 왜 그토록 끈질기게 거부해왔는가? 그가 이번엔 한나라당의 구원투수로 나설 결심은 굳힌 것 같은데, 과연 성공할 것인지, 그리고 파란만장한 권력투쟁의 험로를 헤치고 내년 이맘때 대권을 거머쥐고야 말 것인지에 대해 전망 해보려면, 그를 움츠리게 할 수밖에 없는 내면(內面) 세계를 관통해온 심리적 근원과 저류를 탐색해봐야 한다. 정치가의 정치행위는 ‘성격’을 보면 알 수 있다는 ‘character above all’ 이론이다. 박근혜는 자폐적일 수밖에 없는 성장과정을 겪었다. 부모의 비극이다. 박근혜의 회고록, “난 아버지의 피 묻은 넥타이와 와이셔츠를 빨면서 터져나오는 오열을 참을 수 없었다. …몇년 전 어머니의 피 묻은 한복을 빨던 기억이 스쳐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27세의 나이였다. 나서지 않는 성격일 수밖에! 그리고 배신에 대한 처절한 기억, “유신 때는 ‘유신만이 살 길’이라고 떠들던 사람들이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때 무슨 힘이 있어 반대할 수 있었겠느냐’고 말하는 것을 보니 인생의 서글픔이 밀려왔다.” ‘자폐’와 ‘배신’이란 두 키워드는 박근혜의 ‘정치적 캐릭터’를 설명한다.

박근혜는 기본적으로 이런 추억의 틀에 사로잡혀 비록 마음 속에선 권력에 대한 욕심이 끓어오르지만 이를 채워버리고야 말겠다는 권력의지가 부족하다. 정면 승부수를 띄워 돌파하려는 기질·근성의 결핍! 남들이 길을 다 터주고 꽃가마를 눈앞에다 보여줄 때까지 나서지 않는다. 대전 출신 친박계 강창희는 박근혜가 노무현 탄핵 후폭풍으로 만신창이 된 한나라당의 대표로 나설 때까지 얼마나 방황을 거듭했는지, 생생히 기록에 남겼다. 한나라당이 당의 새 얼굴을 놓고 대책없는 고민만 하고 있을 때 대전 출신 김칠환 전 의원이 강창희한테 박근혜 대표 아이디어를 말한다. 무릎을 친 강창희, 서울로 올라와 경기도 구리 전용원 의원과 함께 박근혜를 몇 차례 설득한 끝에 마침내 박근혜로부터 수락 약속을 받았다. 그런데, 당시 원내대표 홍사덕이 대표 출마 움직임을 보이자 박근혜는 “그러면 난 하지 않겠다”고 물러선다. 강창희가 단독으로 박근혜를 만난다. “나라를 위해 나서야 한다. 아버지라면 어떻게 하셨겠느냐.” 결국 홍사덕이 포기하고 나서야 박근혜가 나선다. 박근혜가 대선 후보 경선에서 MB에게 고배를 마신 것도 현실 정치가로서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권력의지의 부족 때문!

박근혜가 자신의 정치 스타일을 개방과 포용으로 완전히 변혁시켜 ‘뉴 박근혜’가 되지 않는다면 전면 등판한다 해도 결국 한나라당 제(諸) 세력과 보수·우파 시민세력과의 통합에 실패하고, 대선까지 간다 해도 비관적일 수밖에! 대권은 쟁취하지 않으면 결코 손에 쥘 수 없다. 그러기 위해 우선 사람을 모아야 한다. 장강(長江)의 물길을 바꿀 수 있는 세(勢)를 키워야! 친박계 해체는 선택이 아닌 당위! 친이계든, 누구든 모을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모으고, 그래도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뒤따라가서 잡아야 한다. 어! 얼음덩이 같던 박근혜가 진짜 달라졌네? 정적(政敵)들한테도 마음을 확 열고 다가서야 한다. 자신의 비서실장부터 모조리 친이계·정몽준·김문수 사람들로 교체하는 것-1992년 김영삼이 어떻게 민주계의 기득권을 버려 대통령 노태우로부터 권력을 쟁취했는가! 당 안팎 반대 세력 하나 포용하지 못하고 대통령이 되겠다?

일본 보수 정계의 원로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 그는 시대를 초월해 정치가에게 요구되는 보편적 조건을 4가지로 요약한다. ①통찰력 ②설득력 ③세를 모을 수 있는 결합력, 그리고 ④인간적 매력! 인간적 매력의 중요성을 특히 역설한다. “설령 의견 대립이 있었다 해도 헤어질 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느끼게 해주는 것, 이건 정치인으로서 매우 소중한 자질이다.” 박근혜 스스로 변할 의지가, 그것도 전복적(顚覆的)으로 바뀔 각오가 돼 있음을 보여주는 ‘자기 고백’! 그게 먼저 나와야 민심을 녹일 수 있다. 그런 뒤 MB·한나라당 정권을 혁파할 승부수를 쏟아내라. 전광석화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