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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경/소설가

“절에 시주하면 안 된다니까. 사철 공사판을 벌여 온통 망가뜨려 놓으니….”

옆을 지나가던 누군가가 숨이 차서인지 화가 나서인지 씩씩거리며 분통을 터뜨린다. 켜켜이 쌓인 기왓장 옆에 책상 하나를 내놓고 불사에 동참할 보살님네를 기다리며 앉아 있던 남자는 못 들은 척 먼산을 바라보았다.

화가 난들 한국 화엄종의 근본도량이자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부석사 무량수전 앞에서 할 소리는 아니겠다. 그렇지만 공사용 가림막 옆을 지나가던 나 역시 긴 한숨과 탄식이 절로 나오는 걸 어찌할 수가 없었다.

부석사가 어떤 곳인가.

의상대사와 그를 사모한 선묘낭자의 애틋한 전설이 서린 이 천년고찰은 불면 꺼질까 만지면 닳을까 바라보기도 조심스러운 유적과 유물들이 즐비한 곳이다. 갈 때마다 매번 보물찾기 하듯 이전에 놓친 풍경을 새로 찾아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여느 절과 달리 아미타여래불을 모신 곳이라 불상이 법당 가운데가 아니라 왼쪽에 앉아 있는 것도 특이한 점이다. 신라시대 석등이 마당에 오도카니 앉아 있고 고려 때 제작된 벽화가 세월의 옷을 입고 머물러 있다. 배흘림기둥도 아름답지만 산세와 어우러진 무량수전(無量壽殿) 지붕을 타고 흐르는 선의 유려함이 말을 잊게 하는 곳이다.

최순우 선생이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책을 통해 그 탁월한 아름다움과 비할 바 없는 가치를 상세히 설명해 놓았지만 실제 그곳에 가보면 어떤 미학적 수사도 필요 없는 순전한 아름다움 앞에 그만 마음이 먹먹해진다. 화려한 단청을 입히지 않아 오래된 흑백사진처럼 조촐한 처마를 올려다보노라면 왜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이라 말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주차장에서부터 걸어올라가 무량수전 뒤편 조사당(祖師堂)으로 이어지는 소롯길을 따라 한 바퀴 돌아 내려오는 마음은 한없이 착잡하기만 했다.

앞쪽에 식재료를 쌓아놓고 현란한 간판을 달고 있는 식당가 맞은편으로 인공폭포와 분수를 만들어 놓았다. 부석사와 춤추는 분수라니. 진정 타인의 취향이다. 일주문까지 올라가는 오르막길 양 옆으로는 시퍼런데다 찢어지기까지 한 비닐을 둘러친 인삼밭과 녹슨 철 구조물들이 연이어 있다. 무량수전 뒤편은 또 어떤가. 의상대사가 꽂아놓은 지팡이가 자라 지금껏 살아 있다는 전설을 가진 골담초는 거대한 쥐덫 같은 철망 속에 갇혀 있다. 물을 주지 않아도 자란다는 기적을 보여주기 위해 그토록 삭막한 철망을 목조건축에 잇대어 설치해야 했을까.

압권은 툇마루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소화기였다. 그 가스통만 한 크기의 빨간 소화기 앞에서 나는 말을 잃었다. 이 아방가르드한 상상력이라니. 이 모든 아이디어가 누구의 머릿속에서 나왔는지, 그는 혹시 질투심으로 가득 차 지구의 문화재를 훼손하러 온 외계인은 아닌지, 정녕 궁금했다.

공사판 가림막 옆길로 수학여행 온 일본과 중국의 학생들이 잔뜩 걸어 올라오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구석까지 얄밉도록 완벽하게 관리되고 있는 일본의 사찰들이 떠올랐다. 한류 열풍에 질투심을 느끼고 있을 이들이 여기서는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며 걸어가고 있을까.

누군가 시주 운운하며 격앙된 발언까지 했지만 절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보수공사 가림막에 붙은 관리 주체를 보니 해당 지자체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문화유산은 지자체 차원에서 관리할 대상이 아니다. 문화체육관광부야 문화는 뒷전이고 관광에만 신경을 쓴다 하더라도 문화재청의 명백한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유일무이하며 한번 망가지면 돌이킬 수 없다는 점에서 문화유산은 사람과 닮았다. 감식안을 가진 전문가들의 통제와 엄격한 관리가 필요한 것이다.

이제 배흘림기둥까지 숨바꼭질하듯 눈을 가리고 올라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면 시각적 테러를 묵묵히 감내하면서라도 다시 그곳에 가고 싶지 않은 건 순전히 내 까칠한 성격 탓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