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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산/작가, 세종대 인문과학대 교수·국문학

어떻게 하면 수강생을 20명 미만으로 줄일 수 있을까…. 이것이 이번 학기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내가 생각한 ‘꼼수’였다. 그동안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간직해 온 꿈이 있었다. 열서너 명의 수강생과 함께 강의실에 둘러앉아서 토론강의도 하고, 강의와 연계되는 전시회나 박물관도 함께 찾아가고, 예를 들어, 미국의 문화운동 ‘비트 제너레이션’을 이야기할 때는 록페스티벌도 같이 가 함께 들썩거릴 수 있는 그런 강의를 하고 싶다는 꿈이었다.

그 꿈에는 또 다른 절묘함이 숨어 있었다. 학교 학사규정에 수강생이 20명 미만인 과목은 상대평가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성적을 모두 다 A+를 주어도 된다는 말이다. 이게 얼마나 꿈꿔 볼 만한 일인가. 안할 말로, 죽었다 깨어날 정도로 공부는 시키고 모조리 A+를 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황홀할까. 학생들 말로 하자면, 정말 오그라들어서 발랑 뒤집힐 일이 아닌가.

새벽이나 심야에 강의를 할 수는 없고, 9시 첫 강의는 너무 일러서 인천이나 안양 쪽의 학생은 듣고 싶어도 못 들을 테니 그건 안 되고, 10시반이면? 요 야행성 녀석들 늦잠 자느라 못 나올 걸? 강의실은 엘리베이터도 안 서는 3층으로 하자! 혼자 좋아하면서 요렇게 수강생을 스무 명 미만을 만들려고 꼼수를 부려본 것이… 10시반 교양강의였다.

그런데 이 일을 어쩔 것인가. 어떻게 된 일이 정원을 훌쩍 넘어서더니, 83명이나 되는 게 아닌가. 뒷자리의 학생은 보이지도 않게 강의실이 들어차니, 토론은커녕 강의는 선거 유세장 꼴이다.

그 교양 강의에서 엊그제 이런 일이 있었다. 강의를 시작하려는데 몇 학생이 들락날락 웅성거리더니 커튼이 쳐지고, 강의실 불이 꺼졌다. 캄캄해진 강의실…. 잠시 후 촛불이 하늘거리는 케이크를 들고 두 학생이 들어섰다. 전공이 천차만별 다르고, 1학년 새내기에서 졸업을 앞둔 4학년까지 뒤섞인 그들이 손뼉을 치며 입을 모아 부르는 ‘생일 축하합니다’가 울려 퍼졌다. 올해 내 생일이 일요일이라, 앞당겨서 작은 자리를 마련했나 보았다. 후후 불어서 촛불도 끄고, 학생들과 손을 잡고 케이크도 잘랐다.

대학에서 학생들과 만나 온 지 14년이다. 평생 글을 써 오면서 문학 현장에서 겪고 느낀 작가로서의 삶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하여 학생들에게 전해 달라는 학교측의 제의를 받고 시작한 일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시작한 교수 생활, 새학기가 되면 늘 이런 말로 학생들을 만나며 강의를 시작했었다. 우리가 안 쓰는 열쇠는 녹이 슬지만 늘 쓰고 있는 열쇠는 닳아서 빛나지 않느냐. 우리 모두 서로에게 빛나는 열쇠가 되자. 너희들은 나에게, 나는 너희들에게 그렇게 빛나는 열쇠가 되어 가슴 두근거리는 한 학기를 보내기로 하자.

반값 등록금에서부터 인문학의 위기까지를 이야기하는 오늘의 대학 사회. 학생들의 모습은 애처롭다 못해 피폐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날, 오후 늦게 경영학과 여학생 둘이 연구실을 찾아왔다. 정말 공부하고 싶은 건 신학(神學)인데 전공인 경영학과는 너무 충돌을 하니 어쩌면 좋겠냐는 고충을 학생은 길게 이야기했다. 국어국문학과의 이 무력한 선생이 줄 수 있는 현실적 도움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래도 그 학생이 와서 그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그것부터가 나에게 위안이 되었다. 희망이 되었다. 무언가 길을 찾아보자고 이야기하게 만들었다.

프랑스의 작가 알베르 카뮈는 스승의 책에 서문을 쓰면서 이런 의미의 말을 남기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증오와 단절의 역사일지 모른다. 그러나 스승과 제자(弟子) 사이에서 인류의 역사는 생명을 가지고 순환한다. 제자는 갚을 길 없는 많은 것을 스승에게서 가져갈 뿐이다. 그러나 제자는 그것을 새로운 생명으로 창조하여 세상에 되돌려 놓는다. 그럼으로써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인류가 가지는 오직 하나, 긍정과 순환의 역사가 된다고.

돌아가는 학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두려워해선 안 된다, 젊은이들아. 너만이 만들어 갈 수 있는 내일이 저기 시퍼렇게 살아서 너를 기다리고 있지 않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