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년 식물 탐구의 역사 / 애너 파보르드 지음, 구계원 옮김 / 글항아리

중·고교에 다닐 때 누구나 ‘종속과목강문계’를 외워본 적이 있을 게다. ‘종속과목강문계’는 생물의 분류 기준으로 종(species)-속(genus)-과(family)-목(order)-강(class)-문(pylum, division)-계(kingdom)를 뜻한다.

영국 ‘인디펜던트’의 원예전문기자가 쓴 이 책은 식물의 분류체계, 즉 ‘종속과목강문계’가 어떤 역사를 거쳐 탄생하게 됐는지를 파고든다. 기원전 3세기부터 스웨덴 생물학자 칼 폰 린네가 오늘날 사용하는 생물 분류법인 이명법(二名法)의 기초를 마련한 18세기 무렵까지 2000년에 걸친 흐름을 조명한다. 린네가 오늘날 만국 공통으로 사용되는 이명법을 만들었지만 린네보다 앞선 수많은 학자들이 수천년에 걸쳐 자연의 체계에 대해 고민했다. 책은 이처럼 린네에게 식물 분류의 틀을 세울 수 있도록 해 준 거인들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책에 따르면 식물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라는 관점에서 식물을 연구한 최초의 인물은 그리스의 철학자 테오프라스토스였다. 그는 철학자가 사물을 그 본질에 따라 분류함으로써 자연계의 이상적인 형태에 대한 생각에 도달할 수 있다는 그의 스승 플라톤의 사상을 식물에도 적용했다. 출판 문화의 발전은 식물 탐구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옛날의 파피루스 두루마리는 한쪽 손으로 두루마리를 펴면서 다른 손으로 말아야 했기 때문에 한 번에 한두 줄씩밖에 보이지 않아 그림을 보는 데는 불편한 점이 많았다. 하지만 서기 1세기 무렵 파피루스를 널찍하게 한 장씩 만들어 오늘날의 책 형태로 만드는 방법이 발달하면서 글과 더불어 식물의 그림을 함께 실을 수 있게 됐다.

7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이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아름다운 그림이다. 고대 희귀 필사본과 근대 식물도감에서 추려낸 158개의 컬러 식물 도판은 눈을 즐겁게 하며, 식물 분류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저자는 식물을 분류하고 이름 붙이는 일이 시대의 철학적·종교적 가치, 정치권력과 경제 상황, 매체의 발명과 지식의 유통 과정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신과 무관하지 않다고 역설한다.

김도연기자 kdych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