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은 없다 / 윌리엄 파운드스톤 지음, 최정규·하승아 옮김/ 동녘사이언스

자, 다음 두 가지 선택안 중 하나를 선택해 보시라.
A. 15그램짜리 큰 초콜릿을 먹으면서 자신의 인생에서 실패한 경험을 기억해서 쓰는 것
B. 5그램짜리 작은 초콜릿을 먹으면서 자신의 인생에서 성공했던 경험을 기억해서 쓰는 것

단, 글을 쓰면서 초콜릿을 모두 먹어야 하고, 남겨서 집에 가져가는 건 허용되지 않는다. 중국 대학생들을 상대로 이 실험을 시행한 결과 65%의 학생들이 큰 초콜릿을 주는 A안을 선택했다.

‘실패했거나 성공했던 경험담을 쓰는 것’보다는 ‘더 큰 초콜릿을 차지하는 것’이 중요하게 작용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A안을 선택한 학생들이 더 큰 만족감을 느꼈을까.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 중 일부에게는 선택권을 주는 대신 두 가지 안 중 하나를 지정해 주었다. 즉 일부 학생에게는 15그램짜리 초콜릿을 먹으면서 인생에서 실패했던 기억을 되살려 쓰게 했고, 또 다른 일부 학생에겐 5그램짜리 초콜릿을 먹으며 성공했던 경험담을 쓰게 했다. 두 그룹 모두 다른 선택안이 있다는 것을 모르게 했다.

이 결과 A안을 수행했던 학생들은 대부분 불쾌감을 느낀 반면, B안을 지정받았던 학생들은 훨씬 더 행복해했다. 기분좋은 일을 하면서 아울러 초콜릿을 먹었던 것이다.

저자는 결국 “더 큰 초콜릿을 가질 수도 있다는 정보가 화근”이라며 “사람들은 더 작은 초콜릿을 갖게 되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었던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 실험은 우리 삶의 축소판이다.

저자는 “화폐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쓰면서도 달콤한 초콜릿”이라며 “우리는 가장 싼 가격을 찾고, 가장 높은 임금을 찾고, 가장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생애를 보낸다”고 말한다. 그 결과 인상을 쓰고 하기 싫은 일을 평생 하면서 더 큰 초콜릿을 빨아먹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가격은 없다(Priceless)’라고 주장한다. 덧붙이자면 ‘절대적이거나 합리적인’ 가격은 없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가격심리학’에서는 가치란 손에 잡히지도 않고, 상황에 따라 조건적으로 변하며 마치 유령의 집 거울에 비치는 모습처럼 흐느적거리는 것으로 보고 있다.

가격은 단순한 숫자에 불과하지만 복잡한 감정의 집합을 만들어낸다. 상황만 달라지면 똑같은 가격이 할인된 가격처럼 보일 수도 있고, 정반대로 바가지 요금처럼 보일 수도 있다. 아니면 가격의 변화가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물건을 흥정할 때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생각한 가격과 자신에게 제시된 가격을 서로 비교해 보고 살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한다. 누구나 모든 행동에 가격을 부여하고, 그 가격들이 행동을 결정한다고 여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잘못된 것이며, 최소한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여주는 모델로도 적절하지 않다. 나아가 책은, 사람들이 보이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나름대로는 신중한 가격 설정 패턴이 누군가에게 이득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가격 설정의 비일관성을 호시탐탐 노리면서 이것에서 이득을 취하려는 자들은 도처에 널려 있다.

19세기의 정신물리학을 비롯, 행동경제학·신경경제학·사회심리학의 최근 연구결과를 아우르고 있는 책은 한마디로 가격과 관련된 심리와 사회현상을 흥미로우면서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돈과 가격의 의미를 꿰뚫게 되면 더 이상 가격이라는 허상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